연세대 객원교수

어쩌다 길거리에서 군복 입은 병사들을 보면 믿음직스럽기보다는 그 약골의 모습에 걱정이 앞섰었다. 저런 문약한 젊은이들이 사나운 북한 병사들하고 맞붙었을 때 과연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미덥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눈에 띄는 우리 병사들은 유난히 안경 낀 사람들이 많았고 얼굴들은 하나같이 가냘프고 어리숙해 보였다. 그래서 그들을 볼 때마다 든든한 마음보다는 오히려 측은지심이 생기고 공연히 안됐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규민 연세대 객원교수
홍대 앞 까페나 기웃거리다가 군대 끌려가 고생이 많겠구나, 밤새 컴퓨터 게임만 하던 녀석들이 훈련소 몇 주로 사람 되겠나, 핸드폰 손에 달고 다니며 '여친'과 카톡이나 하면서 세월 보내던 한량이 군에 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등등 부정적인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지난 달 초 발생한 목함지뢰 테러(이건 분명히 테러인데 그런 표현을 쓴 언론인은 없었다)이후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당시 병사들이 반사적으로 경계 태세에 들어가고 부상병들을 신속하게 후송하는 대응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나는 우리 군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실제상황인데도 당황하지 않고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병사들의 모습은 그들이 실전에 대비해 얼마나 훈련이 잘되어 있는지를 증명했다. 40여 년 전 내가 근무했던 1사단, 바로 그 부대의 후배들이 오늘날 이토록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그 후 펼쳐진 장면은 더욱 감동적이다. 전방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적잖은 현역 병사들이 전역명령을 자진 반납하고 군에 남겠다고 선언했다. 고참 병장 때 혹시라도 DMZ에서 충돌이 벌어져 전역이 연기되면 어떡하나 초조해하던 과거 제대말년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예비역들이 국방부 홈 페이지에 군복 군화 사진을 올리며 국방장관에게 명령만 내려달라고 촉구하는 기백은 과거 중동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 유학중인 이스라엘 예비역 학생들이 귀국대열을 이뤄 화제가 됐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전 후방에서 우리 젊은이들은 이렇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결의가 확고했다.

불행하게도 나의 그 시절에는 젊은이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그만하지 못했다.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데모로 캠퍼스는 최루연기 속에 날이 새고 해가 졌다. 일부 젊은이들은 "이런 체제는 지킬 가치가 없다"며, 금지된 사회주의 서적들을 구해 읽는 것으로 정권에 대한 반항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정부 학생들에게는 보복으로 군 입대영장이 발부돼 정부 스스로 '신성한 국방의무'라는 말을 더럽혔다. 데모를 하다가 군에 강제로 끌려간 대학생들은 최전방에서 폭력과 학대 속에 3년(형)을 살아야 했지만 호소할 데가 없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과연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려는 병사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심리전은 상대에게 약점이 있을 때 그 효과가 극대화 된다. 북한의 대남 심리전이 남한 쪽에 가장 잘 먹혔을 때가 바로 그 시절이다. 1980년대 군사정권에 항거하던 대학가는 북한 심리전의 전위대 같은 주체사상파에 의해 장악되었다.

주사파들이 전하는 북한소식은 운동권 학생들에게 바이블 같은 존재였다. 교수나 부모 말조차 믿지 않는 학생들이었지만 주사파가 전해주는 북한의 지령은 신주 모시듯 대자보에 옮겨 붙이며 투쟁했다. 불과 30여년, 이 나라가 민주화되어 언론의 자유가 넘칠 정도로 풍요로워진 요즘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지금, 거꾸로 북한이 대북확성기를 통한 심리전에 예민하다는 것은 그들 체제에 취약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고 존엄'은 북한 주민들에게 '최고의 우상'이면서 한편으로는 심리전에서 '최고의 약점'이기도 하다. 그 약점을 쉽게 없애버릴 수 없다는 것이 더 큰 약점이기도 하다.

'최고 존엄'의 진짜 모습을 전하는 휴전선의 확성기 소식은 함경도 최북단 마을까지 구전되어 가는데 불과 한나절 밖에 안 걸린다고 하니 그들이 왜 확성기에 목을 매고 협상을 하려는지 짐작케 한다. 어느 시대든 정보를 많이 가진 자 곁에는 사람이 모이게 마련이다.

북한에서 싱싱한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질 수 있었던 부류가 우리 확성기 소식을 듣던 최전방 인민군 병사라고 하니 우리에게는 큰 자산이 확보된 셈이다.

이번 사태에서 보여준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바로 우리가 과거보다 지킬 가치를 더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개인적 이익과 무관한 국방 같은 대중의 공유가치는 때에 따라 그렇게 목숨 걸고 지킬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청년 실업률이 10%를 넘는 암울한 시대에, 못난 기성세대가 그것밖에 해주지 못한 부끄러운 상황인데도 국가를 먼저 생각한 우리 젊은이들의 자세가 더욱 가상한 것이다. 이제 정부는, 기성세대는 빚진 마음으로 청년들의 취업을 위해 더욱 골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언젠가 다시 북한의 선동 심리전에 취약할 때를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