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잠시 배움(學)을 놓아두고(放) 누렸던 여유로운 늦잠도, 여행의 추억도 만지작거릴 새 없이 다시 익숙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는 시기이다.

해마다 방학이면 사촌들을 만나러 친척집 순례를 떠났던 어린 시절, 다들 대도시에 사는 탓에 그 시절 나는 시골생활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소위 '아스팔트킨트'인 필자에게 시골은 어릴 적 보았던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그려진 농촌의 모습이 시골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다. 물론 농촌이 언제나 넉넉하고 따뜻한 인심, 투박하지만 정겨운 사투리 같은 낭만적 이미지만 표상하지는 않는다.

이문구의 '관촌수필'처럼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의 긍정적인 가치뿐 아니라 그것을 잃어가는 농촌의 현실 모두를 어눌한 듯 날카로운 충청도 사투리로 담아낸 작품도 있기 때문이다.

아동문학 속에 그려진 시골의 이미지도 때로는 낭만적으로 때로는 현실비판적으로 그려져 왔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윤섭의 동화 '우리 동네 전설은'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 책의 주인공 준영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시골 교회의 담임 목사로 부임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갑작스레 시골로 이사를 하게 된다.

도시 생활이 익숙한 준영이는 이러한 변화가 내키지 않아 곧 도시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전학 온 둘째 날, 아침까지 등하교를 함께 해 주셨던 엄마도 없이 이제 준영이는 혼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교길이 낯설지만 아직은 누구와도 친해지고 싶지 않은 탓에 준영이는 혼자 가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과는 달리 그날 이후 준영이는 5학년 내내 한 번도 혼자서 집에 가지 않게 된다. 어찌된 일일까?

사정은 이러하다. 그날 집에 혼자 가려던 준영이를 기다리던 같은 마을 친구들이 마을의 무서운 전설들을 들려주었다. 그 전설 때문에 득산리 마을 어느 아이도 중학생이 되기 전에는 하교길에 혼자서 집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준영이는 이 전설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마을의 불문율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전설의 내용이 무서웠다기보다는 "믿고 안 믿는 건 네 자유지만 우린 정말 너가 걱정되기 때문에 말해주는 거야"라며 불안을 부추기던 세 아이의 탁월한 이야기 솜씨 때문이었다. 조금 전까지 전학생의 낯선 기분에 빠져 들어 외로운 하교길을 자처했던 준영이는 이제 어린 아이의 싱싱한 간을 먹으려는 방앗간집 노인이나 뱀산에 묻힌 아기 영혼의 울음소리를 피하기 위해 세 친구들과 달음질쳐 집에 돌아오기 바빠진다.

그러는 동안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찾아온다. 시골 마을이라서일까? 도시에서 지낼 때와 달리 모든 감각이 깨어난 것처럼 준영이는 가을의 첫날이 시작되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가을이 오자 준영이의 세 친구들은 전설 속에서 어린 아이들만 보면 미쳐 버린다는 돼지 할아버지네 밤밭에 몰래 들어가 거의 매일 서리를 한다. 그러다 뒤쫓아 오는 할아버지의 고함소리를 들으면 마을 어귀 양지바른 곳까지 가슴이 터질 듯 달음질쳐 와서는 생밤을 까먹으며 즐거워한다.

아이들이 나눠준 밤을 맛있게 함께 먹긴 했지만 준영이는 죄책감과 두려움 때문에 늘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다가 함께 달아나곤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늘 소리부터 지르고 나타나 아이들이 도망갈 틈을 주고는 철조망 앞까지만 아이들을 따라오던 돼지 할아버지가 그날만은 철조망 밖, 준영이가 서 있는 곳까지 따라 나온다. 아이들은 뒤늦게 모두 달아났지만 갑작스러운 변화에 얼어붙은 준영이는 돼지 할아버지에게 붙잡히고 마는데….

준영이와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이 마을의 전설은 모두 사실일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것은 스포일러이기도 하거니와 이후의 일들은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이 직접 읽고 확인하시기를 권해 드린다.

다만, 그렇게 가을이 지나고 또 겨울이 지난 후 6학년이 된 준영이와 세 친구가 서울에서 전학 온 남자아이에게 마을의 전설과 절대로 집에 혼자 가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설명해주는 낯익은 장면이 반복될 때 우리는 이 전학생 아이가 어떻게 득산리 아이들과 친구가 될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정도는 미리 말해두어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