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용인소방서 상황실-현장대원 '유선통화녹취록' 단독 입수
직장동료 지칭 현장서 수색장소 급변경 등 정황 드러나 파장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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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킹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국정원 직원 임모(45)씨가 숨진 채 발견될 당시, 국정원이 소방당국과 함께 수색현장에서 모종의 역할을 한 정황이 드러나 파장이 예상된다.

그동안 임씨 수색과정에 국정원 직원이 소방당국과 동행했다는 것은 확인됐으나,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져진 것이 없었다.

6일 본지가 단독 입수한 <용인소방서 상황실과 현장대원간의 유선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임씨 실종 당일인 7월18일 오전 용인소방서 상황실 근무자가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화산리 일대에서 수색 중인 현장대원들에게 새로운 수색장소를 지시하면서 현장에 같이 있는 '관계자'에게 자세한 위치를 물어보라고 통보했다.

이 녹취록은 경기도의회 양근서(새정치·안산6) 의원이 경기도 재난안전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다.

상황실 근무자는 이날 오전 11시35분 현장대원에게 '시궁산 정상쪽'으로 수색하라고 지시했다가, 갑자기 '도라지골'(고라지골)로 수색장소를 변경했다.

이 과정에서 혼선이 생기자 상황실 근무자는 "그 관계자에게 물어보세요"라고 말했다.

현장대원이 "어디 관계자?'라고 묻자, 상황실 근무자는 "그 저기 위치추적 관계자 같이 없어요?"라고 반문했다.

이어 현장대원은 "없어. 그 사람들 차 가지고 가서 그 사람도 나름대로 찾아준다고"라고 말하자, 상황실 근무자는 "그럼, 그 사람한테 전화해 가지구요. 도라지골 어디로 올라가는 건지 그 쪽도 한번 이렇게 수색을 하라고 하거든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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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통화는 오전 10시30분부터 수색에 나섰던 현장대원들이 1시간 이상 임씨를 발견하지 못하자, 현장에 같이 있는 '관계자'에게 물어보고 다른 장소를 수색하라고 지시하는 내용이다.

통화에 등장하는 '관계자'는 이날 오전 11시11분쯤 2차 수색동선 회의를 위해 화산리 버스정류장에 집결해 있던 현장대원들과 만나 2~3분간 대화를 나눈 국정원 직원으로 밝혀졌다.

당시 이 관계자는 보호자로부터 연락을 받고 온 직장동료라고 신분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정황을 종합해 보면, 국정원 직원이 임씨 실종 당시 소방당국과 함께 수색현장에 있었으며, 수색과정에서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상황실 근무자가 24분전 수색현장에서 소방대원들과 만난 '관계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이 사람을 '위치추적 관계자'로 지칭하면서 수색장소를 물어보라고까지 지시하는 등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 전개됐기 때문이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용인소방서 관계자는 녹취록에 '관계자'라고 표현된 사람은 실종자의 직장동료라는 의미이며, 당연히 수색과정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수색장소로 지시된 '도라지골'도 도 재난안전본부로부터 통보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1분22초가량 이어진 통화 전체 내용을 살펴보면, 재난안전본부에서는 시궁산 정상쪽에서 임씨의 위치가 파악돼 그 쪽으로 현장대원들을 이동시켜려고 했으나, 갑자기 도라지골로 수색장소가 바뀌게 되고 자세한 내용은 현장에 같이 있는 '위치추적 관계자'에게 물어보라는 내용이다.

특히, 상황실 근무자가 현장대원들과 같이 있지 않았던 '관계자'와 전화연락을 해 보라고 지시하자, 현장대원들이 '알았다'고 대답한 것을 보면 이미 이 관계자의 연락처까지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국회 안전행정위) 의원은 지난 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씨 실종 당시 수색현장에 나타난 국정원 직원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정 의원은 "소방본부측에서 제출한 자료를 보면, 7월18일 오전 11시11분쯤 현장대원들과 만난 국정원 직원은 임씨의 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수색현장에 왔다고 말했다"며 "이미 임씨의 위치를 알고 있는 부인이 40분 후인 11시51분 다시 112에 위치추적 신고를 했는지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10일 열리는 안행위 전체회의에서 이같은 사실관계를 철저히 파헤치겠다"고 밝혔다.


/이상우·이경 기자 jesus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