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훈 시흥소방서장

가물은 탓일까. 물 빠진 임진강변에 갈매기는 보이지 않았다. 600여년전 노로의 퇴역 정승과 어울렸을 갈매기의 흔적을 좇아 지난 주말 파주의 반구정(伴鷗亭)에 올랐다. 조선왕조 최고의 정승이라 불리는 청백리의 상징 황희정승의 족적을 되짚어 보기 위해서였다. 반구정은 황희가 노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파주로 와서 정자를 짓고 갈매기가 나는 모습을 관조하며 시문을 즐긴 곳이다.

방촌 황희 선생(1363~1452)은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까지 정치가이자 관료로 활약하며 청백리의 전형으로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재상에 꼽히는 인물이다.

그의 청렴함과 관련된 일화는 여럿 있어서 미복(微服) 차림으로 황희 정승의 집을 방문한 세종 임금이 그의 청빈한 삶에 감탄을 마지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일국의 정승이 집안에서 멍석을 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먹던 밥상에도 누런 보리밥과 된장, 고추밖에 없어서 임금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자신이 천거한 김종서가 강원도 지방을 순찰하고 돌아올 때 토종 꿀 한 단지를 가지고 와서 병졸을 시켜 황희에게 선물한 얘기도 있다. 고마워할 줄 알았던 황희는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이 꿀은 뇌물로 받았거나 공짜로 받은 것이 분명하다. 또 나라의 녹봉을 받는 공인을 사적인 심부름꾼으로 부리다니" 황희는 호통을 치며 꿀을 돌려보냈다. 방촌선생의 조복은 단 한 벌 뿐이었는데 어느 겨울밤 겉옷을 빤 사이 갑자기 입궐하라는 세종의 명이 있어 솜이 너덜너덜한 속옷을 입고 가게 되었고 이유를 안 세종이 옷감을 하사하였으나 받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옛날이라 한들 한 나라의 재상이 단벌로 지냈다니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2014년도 통계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정부 고위공직자 평균 재산은 12억이고 국회의원은 평균 26억원으로 국민 평균 재산 2억 7000만원과 비교해 볼 때 시대를 넘어선 황희 정승의 청빈함은 확연히 드러난다. 놀라운 얘긴 그 뿐이 아니어서 그는 지붕이 새서 우산을 받치고 지내면서도 우산없는 서민들을 걱정하였고 사서삼경 등 경서를 들여다 볼 때 외에는 늘 눈을 감고 살았다.

이를 본 그의 아내가 눈이 아파서 그러냐고 묻자 정승은 빙그레 웃으며 "눈을 뜨면 욕심이 일어나기 때문이요"라고 태연히 말했다. 욕심으로 점철된 현대를 사는 우리가 눈을 감고 살 수는 없으나 공직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울림은 크게 남아 숙연하게 만든다. /신종훈 시흥소방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