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서 송도중학교 교장

오늘날 부모들은 너무나 조급하다. 소위 '조기 유학', '조기 영어교육', '조기 독서' 등의 영유아기 조기교육의 '광풍'이 불고 있는 이면에는 부모들의 조급함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조기교육을 사전적 의미로 살펴보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아닌 아동에게 일정한 커리큘럼에 따라 실시하는 교육을 말한다. 대체로 만 0∼6세 아동을 대상으로 유아의 지적 잠재력을 조기에 개발하거나 훈련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난해 육아정책연구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비로 무려 3조에 가까운 돈이 지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련 조기교육 열풍 속의 영유아기 아이들 일상을 살펴보면 정말 기가 막힌다. 평일 오전에는 유아 영어학원에 다니면서 미술과 음악을 영어로 배우고, 오후에는 수학과 창의력 수업을 받는다. 주말에는 부모가 문화센터에 데려가 뮤지컬이나 클래식 공연을 보여주거나, 다양한 체험학습을 위해 장거리 나들이를 가기도 한다. 도시 근교나 시내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기도 하며, 문화 체험을 위해 유명한 특별전시장에도 기꺼이 간다. 이처럼 온갖 조기교육으로 영유아기 아이들이 내몰리는 것은 내 아이가 남들보다 더 잘 됐으면 하는 부모의 욕심이나 기대, 내 아이만 경쟁에서 뒤처지면 어쩌나하는 부모들의 조급함이 빚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부모들의 과도한 교육열을 부추기고 유아교육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데는 매스컴을 포함한 일반 여론과 국가 정책도 큰 몫을 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영유아기의 조기교육이 학습 성과를 높인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감정 발달을 늦추고 스트레스만 가중시켜 아이의 학습열을 낮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 레슬리대의 낸시 칼슨 페이지 교수는 "조기교육은 아이의 학습 방식을 크게 오해한 결과"라며 조기교육은 혁신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대신 수동적인 정보 소비자만 양산할 것이라며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교육학자, J. 업호프(James Uphoff)와 J. 길모어(June Gilmore)의 1985년 연구에서는 지적교육을 조금 늦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초등 3학년부터 중학생이 될 때까지 저력으로 작용하는데, 이에 반하여 때 이른 조기교육을 경험한 학생들은 저학년에서 학습부진을 보일 확률이 높아지는 등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선행학습'은 또 다른 조급함의 결과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글을 다 배우고, 학교에서 교과 진도가 나가기 전에 이미 학원에서 교과목을 다 배워 버린다. 이런 선행학습은 자녀들이 학교 수업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 자녀의 발달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선행학습은 자녀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해 오히려 두뇌 발달을 해치거나 학습 능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 핀란드 교육이 우리나라 교육과 다른 중요한 차이 중의 하나가 바로 선행학습이 없다는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교육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특히 한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려면 엄청난 희생과 인내를 감수해야 한다. 교육은 보다 멀리 내다볼 것을 요구한다. 그만큼 중요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표현하는 것도 교육의 이러한 성격 때문일 것이다. 마치 농부가 씨를 뿌렸으면 싹이 나기를 기다리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교육은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조급함은 교육을 그르치게 하는 첩경이다. 만약 싹이 이제 막 나왔는데 자라기를 기다리지 못한 채 싹을 손으로 잡아당긴다면 그 결과는 어찌될 것인가?

교육은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림이 없는 교육은 이루어질 수가 없다. 부모가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자녀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자녀교육은 '이미' 늦었고 '벌써' 끝났다고 생각하기 전에 먼저 조급함을 버리고 자녀의 잠재력을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기다릴 때 곡식이 무르익는 것처럼 우리 자녀들의 인생도 무르익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자녀는 절로 크지 않는다.

조기교육보다는 부모와의 대화를 통해 아이들의 사고체계를 형성해 주어야 한다. 때문에 무엇보다 현명하고 주체적인 부모의 교육 가치관 정립이 필요하다. 진정한 자녀교육의 성공은 멀리 보고 기다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성취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