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안양문화예술재단 실장
▲ 송경호 안양문화예술재단 실장

오늘도 페이스북에 몇 자 올렸다. 시답잖은 얘기며, 하나마나 한 소리다. 저마다 외로운 각자도생 시대의 넋두리라는데, 그 말 맞다. '좋아요'를 눌러주는 벗들의 보시가 반갑고, 한 줄 댓글에 감읍한다. 페이스북은 그런 이들로 늘 북적인다. 2014년 4월 기준 월간 이용자 수는 1300여 만명. 디지털 신호로 전해오는 영혼 없는 메시지조차 아쉬운 시대니 그럴 거다. 덕분에 창업자 저커버그는 갓 서른 넘긴 나이에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트위터도 그렇다. 메시지는 140자로 압축돼 사이버공간을 누빈다. 모바일 기기에 최적화된 셈이다. 연결성까지 강하니 '빛의 속도'로 번진다. 밤늦은 시간에도 내가 좇는(follow) 이들의 트윗질이 계속된다. 술 한 잔하고 있다거나, 누구와 왜, 어떤 술을 마시고 있는지 몇 초 간격으로 날아든다. 덩달아 팬(?)들의 성원도 잇따라 답지한다.

그러니 뭘 어쩌라고 묻고 싶지만, 피차 성원을 구걸하는 입장이니 접어둔다. 바야흐로 세상은 지저귀는 소리(twitting)로 충만하다. 하지만 지나치면 화를 부르는 법. 트위터의 성장은 2011년 정점을 찍은 뒤 가파른 내리막을 타고 있다.

이 나라 토종 인스턴트 메신저 카카오톡에는 토 달아봐야 사족이다. 한 시장조사기관의 지난 4월 통계에 따르면 카카오톡 국내 이용자는 3094만여명. 철부지 애기들과 운신 곤란한 이 빼곤 다 쓴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국민 메신저'라는 말이 그럴듯하다. '카톡'은 포털 다음과 한 몸이 되면서 몸집을 더 키울 태세다.

SNS 시장에는 이밖에도 수많은 서비스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페이스북과 같은 프로필 기반 뿐 아니라, 관심 주제, 비즈니스, 블로그 등 다양한 영역에 기반을 둔 서비스들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 한다. 덩달아 사람 사이의 관계는 비용과 시간이 덜 드는 SNS 쪽으로 이동한다.

일상의 생각과 감정 따위도 사이버 영토에서 소비된다. 사용자는 외견상 콘텐츠 소비자이자 생산과 유통의 주체로 읽힌다. 관심도 높은 특정 이슈는 높은 확산력에 힙 입어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따른 착시다. 이쯤 되면 웬만한 언론 못잖은 입지를 구축한 셈이다.

전통적 언론으로서는 SNS가 풍미하는 세상이 당혹스럽다. 누군가의 말처럼 '웃기지도 않고 황당한 것들'이 그리 사람을 불러 모으니 말이다. 문제는 '웃기지도 않고 황당한 것들'이 일으키는 파장이 커도 너무 크다는 거다.

그러니 웃기든 황당하든 발 등의 불이며 모르쇠 할 수 없는 과제다. 게다가 SNS는 올드미디어의 대척점에 서있는 뉴미디어라는 점에서 경쟁상대며, 열광적 군중을 끌어 모으는 뉴스 유통 플랫폼이다. 덕분에 신생 대안미디어들은 그 망을 타고 손쉽게 '언론계'에 진입하지만, 거대 종이신문 입장에서는 달갑잖은 일이다.

어쨌거나 크게 달라진 인터넷 환경에서 대부분 언론들은 포털이 장악한 PC기반의 웹 진입에 사활을 건다. 대규모 뉴스 유통망인 모바일 쪽에도 저마다 뛰어들고 있다. 어뷰징 등 꼼수로 포털의 조회 수를 높이고, 각종 SNS에 뉴스를 공짜로 퍼 나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클릭 수나 조회 수는 곧 돈이기 때문이다.

뉴스나 정보 콘텐츠의 변화도 눈부시다. 달달하거나 부드러운 것들이, 쓰거나 딱딱한 것들을 밀어낸다. 논리나 이성보다 정서와 감성이 먼저다. 공룡이 된 TV 화면은 먹을 것과 놀 것으로 차고 넘친다. 짐짓 근엄함을 뽐내던 종이신문들도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쪽으로 방향을 튼다. 흥미로운 것은 유익한 것을 압도한다. 대통령의 패션이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조차 뒷전으로 밀어낸다. 이로서 기자들에게는 '기레기', 종이신문에는 '찌라시'라는 딱지가 붙게 됐다.

저널리즘의 퇴행이며, 궁극적으로 사망에 이를지도 모른다.

오늘날 SNS의 번영은 언론의 불운일 수 있겠다. 그 불운을 넘어서기 위해 SNS를 닮아가는 언론의 모습이 눈물겹다. 그런들 SNS의 위력을 넘어설 수 있을까. 아닐 거라는 거, 스스로 다 안다. 결국 답은 언론의 본질, 저널리즘의 회복에 있을 거다. SNS가 감당하기 어렵지만 언론은 마땅히 해야 하는 것 말이다.

나름 언론인이라면 잘 알고 있듯 소수자 약자에 귀 기울이고, 거대 권력과 자본에 맞서야 한다. 제도적 폭력을 고발하고, 권력의 무능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 심층, 탐사보도 역량을 더 강화해야 하며, 기획 특집기사 등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이른바 '사회의 목탁'이라는 고전적 의무에 주목하고, 시대의 감시견(watch dog) 노릇을 제대로 하자는 거다. 어쭙잖게 SNS를 흉내내려다가는 시쳇말로 죽도 밥도 안된다. 어려운 시절, 혼란한 시대일수록 본질에서 길을 찾는 지혜로움이 절실하다. /송경호 안양문화예술재단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