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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이다. 또 막힌다. 한쪽에는 영업용 택시들이 100m 이상 늘어서 있다. 한창 바삐 거리를 내달려야 할 시간에 줄을 서 있는 것이다. 경기 부진 혹은 과잉 허가 등에 따른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본다. 도시의 실핏줄이 잘 통하지 않는 동맥경화의 현장 같다.

▶그 너머에는 모 백화점의 대형 선전 간판이 보인다. 점내 갤러리에서 하는 전시회를 안내하는 모양이다. 화면 가득히 바위덩이가 하늘에 둥실 떠 있고, 그 주변으로 갈매기인 듯한 새 몇 마리가 바위를 호위하듯 힘겹게 날개짓을 하고 있는 형상이다. 어디선가 보았던 낯익은 그림이라 생각됐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란 이름을 떠올린다. '물결치는 바다',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바위'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진 성채'의 이미지가 겹쳐져 연상된다. 그뿐이 아니다. 널리 이름이 알려진 몇몇 화가들의 '모티브 베끼기'까지도 함께 떠오른다. 불과 1~2분 동안의 일이지만, 당혹스러웠다.

▶막스 에른스트, 조르조 데 키리코, 마르크 샤걀, 살바도르 달리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우리가 일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경이감을 선사하면서 사물과 세상을 전혀 새롭게 읽게 해 준 선구자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의 화가들이 중력의 법칙을 준수하고 있을 때, 그를 넘어서서 무중력의 환상적 미학을 창조한 바 있다.

▶그러나 무중력의 효과는 그들까지이다. 그것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답습하는 것은 이미 신경숙 류의 표절에 지나지 않는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지만, '창조'는 그렇게 기존 질서를 뛰어넘어서는 자들만이 거둬들이는 열매로서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르네 마그리트'에게 영감을 얻어 미야자키 하야오가 세계에 내놓은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나, 수많은 인디밴드를 배출시킨 지역적 토양을 바탕으로 출범시킨 인천의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창조물의 하나인 것이다.

▶지난주에는 산고 끝에 인천의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문을 열었다. 경제도 예술과 다를 것이 없다. 창조적 '발상'과 에너지의 '결집' 그리고 내일에의 '비전'이 승패를 좌우할 것은 분명하다. 언제, 어디서나 모방은 삶을 파괴하는 나태한 도락이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