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피아노'

필자는 지난 7월 10일 인천 주안 영화공간에서 열린 제11회 인천 여성영화제를 다녀왔다. 인천 여성 영화제는 2005년부터 시작해서 매년 7월 열리는 영화제로써 여성 뿐 만 아니라 어린이, 노인 등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의 삶과 사상을 담은 많은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다.

많은 여성 영화제에서 소수자나 약자들의 삶을 담은 영화들을 상영하는 이유는 여성을 주류 사회 구성원들(남성) 로부터 차별을 받고 있는 약자로 전제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약자' 라고 부르는 집단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사회의 주류 집단 구성원에게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 다른 소수자나 약자의 집단 구성원들과는 다르게 자신들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 여성학자 이자 작가인 시몬느 드 보봐르는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 진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는 여성이 남성의 의해 차별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학습을 받아 왔기에 주체적인 남성에 비해 여성은 수동적인 여성으로 길러졌다는 의미이다.

오늘은 1993년 개봉됐다가 작년 12월에 재개봉 됐던 영화 '피아노'를 독자 분들께 소개합니다.

여성 감독 제인켐피온의 연출작인 영화'피아노'는 1993년 많은 영화제에서 각본상 및 감독상을 수상 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뛰어 난 영상 뿐 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를 상징을 통해 잘 풀어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6살부터 말을 하지 못하는 에이다(홀리 헌터 분)이다. 그녀는 자신이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시점부터 피아노를 치게 된다. 그녀에게 피아노는 세상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에이다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 스튜어트에게 시집을 가기 위해 자신의 9살 딸, 플로라와 함께 뉴질랜드의 섬으로 간다.

자신의 분신과 같은 피아노도 함께 가지고 간다. 스튜어트가 에이다와 플로라를 데리러 해변으로 오지만 집으로 되돌아 가는 길이 험하기 때문에 무거운 피아노를 가지고 갈 수 없다고 하며 피아노를 해변에 놓아두고 온다.

에이다는 자신의 분신인 피아노를 가지고 갈 수 없는 현실에 분노하면서 하루 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에이다는 원주민들과의 통역을 해주는 베인스를 찾아가 피아노가 있는 해변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처음부터 에이다에게 관심을 보였던 베인스는 그녀와 그녀의 딸을 해변에 데려다 준다. 베인스는 스튜어트에게 자신의 땅과 해변에 방치 되어있는 피아노를 교환하자고 제안하여 피아노를 자신의 집으로 가져온다.

에이다는 피아노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는 것에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다시 찾아오기를 갈망한다. 에이다의 이 갈망은 베인스와 육체적 거래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강압적인 사랑만을 강요받던 에이다는 베인스와의 이전과 다른 자유로운 사랑에 점점 빠지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스튜어트는 에이다의 검지 손가락을 도끼로 잘라 버린다. 그러나 스튜어트는 에이다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베인스와 함께 그녀를 떠나보낸다. 에이다는 베인스와 함께 배를 타고 섬을 떠나게 되고 바다 한 가운데서 자신의 분신과 같았던 피아노를 버리게 된다.

어느 것 하나 자신의 주체적 선택이 없었던 에이다의 삶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드디어 자아를 찾은 에이다는 베인스에게 언어를 배우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에서 에이다의 손가락은 언어를 표현하는 입을 상징하고 피아노 연주는 발화를 의미한다. 많은 영화 전문가들이 이 영화를 대표적 여성영화로 분류하는 이유는 바로 이 설정 때문인 것이다.

프로이트의 욕망이론에서 비언어 세계인 상상계와 자아가 형성되는 가부장제의 보편적 질서 세계인 상징계는 언어의 유무로 구분되어 질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에이다는 극 초반부에서는 피아노 연주(비언어)를 통해 자신을 억압했던 남성 중심적 세계로의 편입을 거부하였다.

에이다의 침묵이 타인에 의해 강요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기존사회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후, 진정한 사랑을 찾은 후에 자아를 발견하고 동시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되면서 상상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영화의 이러한 설정은 감독이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의도한 것이다. 아직까지 영화나 다른 영상 매체에서 여성은 시선의 주체가 아니라 시선의 대상으로 머물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여성의 힘이 커지면서 이런 가부장제의 담론이 서서히 균열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