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꿈꾸는 2045년 '상상'은 이루어진다
희망제작소, 20대 59명 워크숍 보고서 발간
30년후 배움·민주주의 등 영역별 비전 제시
"일자리 자아실현 … 소통공감 정치문화 원해"


20대 청년세대들이 꿈꾸는 미래 한국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희망제작소(이사장 박재승, 소장 이원재)는 최근 이 물음에 대한 청년들의 응답을 담은 연구보고서(희망리포트)를 발간했다.

지난 6월 발간된 '청년이 제안하는 광복 100년 한국 사회'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희망제작소와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한 소셜픽션 콘퍼런스 '광복 100년, 대한민국의 상상'에 참가한 20대 청년 59명이 진행한 토론 및 워크숍 내용을 기초자료로, 영역별 전문가 자문과 활동가 인터뷰, 문헌조사를 모아 작성됐다.

청년, 어떤배움을 원하는가

지난 2월28일부터 이틀에 걸쳐 진행된 소셜픽션 콘퍼런스는 배움, 일자리, 복지, 민주주의, 통일, 환경 등 6개 영역별로 진행됐으며, 토론에 참여한 청년들은 사회적 열망이나 특성별로 나뉘어 영역별로 참가했다.

신자유주의와 사회양극화라는 한국사회 변화의 중심에서 성장한 청년세대들이 제안한 '광복 100년, 한국 사회'의 모습에는 현재 그들이 느끼는 절망감과 위기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들의 비전은 앞선 세대와는 다른 경험과 맥락 위에 있으며, 그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력도 앞선 세대의 그것과는 아주 달랐다.

희망제작소 유혜승 선임연구원은 "그동안 청년을 대상으로 이들이 직면한 문제를 분석하고 재구성한 연구는 많았지만, 청년을 주체로 삼아 이들이 원하는 사회를 체계적으로 재구성한 연구는 드물었다"며 "이번 연구가 청년들의 바람과 희망을 불러내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희망제작소는 경기도에서 시행하고 있는 따복공동체 조성사업에 청년정책을 제안했으며, 서울 노들섬에 도농순환플랫폼을 구축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소셜픽션 콘퍼런스에 참여한 2015년의 20대들은 교육을 권리가 아닌 의무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사회구성원으로서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는 태도와 함께 학력에 따라 임금 격차가 심한 한국의 노동시장의 특성과도 연관이 있다. 즉, 교육은 구직 조건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고졸의 경우처럼 중간학력을 가진 근로자가 중졸 이하의 저학력 근로자보다 29%나 임금을 더 받는다. 반면 중간학력을 가진 근로자는 전문대졸 이상 고학력 근로자보다 임금을 47%나 적게 받는다. 이런 격차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각각 8위와 10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처럼 오랫동안 학벌이 계층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해 온 한국사회에서 청년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또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진로를 탐색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학교라는 동아줄을 붙잡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대해 청년들은 '나 중심'의 기술교육을 위한 교육개편을 희망하고 있다. 특히, 융·복합기술, ICT(정보통신기술) 등의 스마트 혁명을 기반으로 '인간, 창조, 행복' 등의 새로운 가치에 부합하는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했다. 교육의 개념도 기존의 '공부'에서 '배움'(학습)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즉, 교사에 의해 주도되는 교육이 아니라, 학습자가 주도하는 배움에 관심을 나타냈다.

또, 20대들이 상상하는 교육의 모습은 그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동네와 가족, 이웃들로부터 시작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베이비붐 세대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아파트라는 단절된 주거형태에서 자라난 이들이 '공동체'라는 소중한 가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세대는 이같은 미래 배움을 실현하기 위해 육아휴직의 보장, 학습자 중심의 교육정책, 학교 밖 교육의 인정 등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 소셜픽션을 통해 자신들이 상상하는 미래의 한국사회를 제시한 20대 청년들이 토론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년, 어떤 일자리를 상상하는가

일반적으로 '안정적 고용'과 '고임금'으로 상징되는 좋은 일자리에 대해 청년세대는 '자기 일에 대한 존중감'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적절한 임금과 사회안전망이 주어진다면, 사회에 기여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직업을 선택의 우선순위에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현재의 열악한 20대 일자리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열정 페이'로 대표되는 임금 문제,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사내 문화, 이른바 '백화점 모녀 갑질 논란' 등으로 청년들은 자신이 일터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청년들은 나를 위한 시간, 자아를 실현하는 삶의 여유가 보장되는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꼽았다. 즉, '자아 실현'과 '나를 위한 시간'이 좋은 일자리의 열쇳말인 셈이다.

한편,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꼽은 것은 의외였다. 노동시장 유연성은 최근 노동문제에서 뜨거운 이슈로 자리잡고 있으나, 청년들의 이런 인식은 기존의 담론을 뒤집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유로운 일자리 이동의 주체를 바꿔야만 본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유연한 노동'은 해고가 쉬운 일자리로 해석할 수 있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자유롭게 일자리를 바꿀 수 있는 힘'으로 풀이될 수 있다.

여기에는 삶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복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자유로운 일자리 이동은 물론, 창업과 같은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일이나, 사회봉사 등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서도 삶의 안정성은 필수적이다.

청년세대는 자신들이 상상하는 좋은 일자리를 위해서는 노동권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자유로운 일자리 이동을 보장하는 삶의 안정성 확보와 함께 노동시간 단축과 일-가정의 균형,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 강화 등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청년, 어떤 복지를 꿈꾸는가

청년세대는 스스로를 복지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 등에서 청년에 대해 규정하고 있지만, 고용과 관련한 특정영역에 국한될 뿐, 청년에 대한 제도적인 명시도 모호하다. 이 때문에 한국 청년의 사회권 역시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사회권은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생계, 의식주, 노약자 보호 등)로 복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로 인해 청년들은 자신의 몸과 정서 상태에 대해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삶과 자신이 요구하는 삶의 중간지대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고 표현했다. 또, 생애 전반에 누적된 피로감(학습 과다, 경쟁 과다, 엄친아 콤플렉스)과 분노, 패배감, 피해의식, 무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를 자력으로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주고 싶은 선물을 물었더니, 문제투성인 현재의 '정지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현재를 합리화하려는 심리가 강했다. 또, 공동체, 사회적 연대감, 대안적 삶 등을 일종의 트렌드로 인식하거나 성공을 위한 또 다른 통로, 혹은 '남과는 다른' 성공을 위한 통로로 여기는 경향이 많았다.

20대가 상상한 미래의 복지지표로는 숙면시간, 얼마나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는가, 다른 사람이나 자연 등과 얼마나 소통했는가, 얼마나 자주 눈물을 흘렸는가, 내가 다룰 수 있는 악기는 몇 개인가 등이 제시됐다. 이런 결과는 복지는 국가의 책임이라는 고정관념부터 깨뜨릴 필요가 있으며, 개인이 민간 주도의 복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20대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청년세대는 미래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청년주거권, 생애주기별 복지 프레임 등 청년의 사회권 확보를 위한 정책 전략을 요구했으며, 개인 중심에서 마을 중심으로의 '관계' 정책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자신이 상상하는 미래 한국사회의 모습을 적은 쪽지를 소셜픽션 참가자들이 살펴보고 있다.

청년, 어떤 민주주의를 그리는가

20대가 상상하는 민주주의는 일상적이고 소박한 민주주의였다.

이는 상명하복을 강조하는 한국사회의 문화와 청년세대 소통 담론에서 늘 등장하는 갑을관계 속 '을'의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들의 바람을 반영하고 있다. 억압적인 구조와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곧 '말대꾸'가 되는 문화에서 청년들이 탈피하고 싶어했다.

20대들은 가장 먼저 가족과 연인사이, 학교와 직장에서부터 민주주의가 구현되기를 원했다.

특히, 직장이나 사람들과의 관계 속 소통문제, 공감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는 '사회적인 것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20대들이 스스로 삶을 생산하고 재생하며 자신의 힘으로 서고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고 싶어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청년들의 인식은 적극적인 정치참여 의지로 이어졌다. 청년들은 '국민참여 확대'와 '사회질서 유지'라는 두 가지 가치 중 87%가 국민참여 확대에 우선순위를 두겠다고 선택했고, 30년 후에는 '15세 중학생 국회의원'이 등장할 수 있는 생애주기별 국회의원(10~30대 포함)의 비율을 30%까지 높이겠다는 희망도 피력했다. 이런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협력과 참여, 저항과 거부 등의 시민성에 대한 성찰을 통해 민주적 시민양성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0대가 상상한 민주주의 미래지표로는 정치인들이 온라인에서 욕먹는 횟수, 정치인의 투명성 척도, 정치의 질적 평가 확대, 정당 수 증가를 통한 다양한 의견 공존, 건강검진시 소통능력검사 의무화 등 다양한 내용들이 제시됐다.

청년세대는 자신들이 상상하는 미래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 투표율 상향정책, 정치진입 장벽의 제거 등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민주적인 절차에 참여할 수 있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이상우 기자 jesuslee@incheonilbo.com·사진제공=희망제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