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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 때, 팔도 전역에서는 임진왜란으로 아비규환이 벌어지고 있었다. 왜군은 승승장구, 파죽지세로 쳐 올라오고, "군량 운반에 지친 노인과 어린아이들은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힘이 있는 자는 모두 도적이 되었고, 전염병이 창궐해 살아남은 사람도 별로 없었다."

▶"심지어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잡아먹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죽이는 지경에 이르러 길가에는 죽은 사람의 뼈가 잡초처럼 흩어져 있었다."(유성룡 '징비록' 서해문집) 이는 나라를 지켜야 할 군대가 무기도 변변히 갖추지 못하고, 전장에서 도망쳐 빚어 낸 목불인견의 참상이었다.

▶조선 군대는 적의 창칼을 막는 갑옷도 제대로 구비하지 못했다. 한때 공인들이 잠을 자지 않고 갑옷을 만들었지만, 두께가 지나치게 두꺼운 데다가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 며칠이 지나 갑옷 만들기를 중단했다. 경각을 다투는 전투에서 몸을 민첩하게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278년이 지난 신미양요 때도 마찬가지였다. '갑옷'이 '면제배갑(綿製背甲)'이란 이름으로 달리 불리었을 뿐이다. 이 '목면갑(木棉甲)'은 목면을 13겹 겹쳐서 조끼 형태로 만든 것이었다.(민승기 '조선의 무기와 갑옷' 가람기획) 요즘식으로 말하면, 면 방탄복인 셈이다.

▶그러나 "적의 탄환은 막을 수 있었으나 한여름에는 더워서 입고 있는 병사가 거의 초주검이 되었고, 적의 화포 공격을 받으면 이내 갑옷에 불이 붙어버렸다."(같은 책 344쪽) 그런 연유로 초지진에서 분투했던 어재연 휘하의 수군들은 어처구니없게 불에 타 죽기도 했다.

▶그리고 또 144년이 흐른 오늘, 아직도 우리 군대는 옛날의 갑옷인 '방탄복' 하나를 장병들에게 제대로 입히지 못하고 있다. 북의 개인화기인 AK74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방탄복을 장교들이 돈을 먹고 눈 감아 주었다니 이런 자멸적 이적행위가 또 있을까 싶다.

▶음파 탐지기도 못 달고 출항한 군함, 전차에 치명적인 자동소화 가스, 해상 헬기의 부정 도입 등 온갖 군 관련 비리 소식을 들을 때마다, 힘없는 국민들은 하늘에 묻고 싶다. 이 시대의 유성룡, 이 시대의 이순신은 정녕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