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

도시는 바쁘다. 무지하게 바쁘게 돌아간다. 편안히 쉴 틈이 없다. 서울특별시부터 인구가 가장 적은 계룡시에 이르기까지, 전국 85개 도시의 이름을 내건 유기체들은 범접할 수 없는 속도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간다.

행자부 통계에 인구가 세 번째로 많은 도시로 등록된 인천은 더욱 빡빡하게 돌아간다. 전체 인구 30%에 육박하는 일꾼들이 늦은 밤이 돼서야 침소로 변신한 인천으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평범한 저녁을 먹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그나마 보상차원에서 휴일에 찾아간 이름난 식당은 늘 만원이었다. 오래 줄서서 기다린 후, 후다닥 먹고 어디론가 또 급히 떠나 가줘야 가장의 용이 주도가 증명된다고 믿는 도시인이 되었다.

한편, 인천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것은 초월적 존재가 돼야 했다. 남편을 대신해 공부 가르치고 다양한 문화체험을 위해 눈과 귀, 코마저 동원해 이 곳 저 곳 동냥하고, 이마저 수월치 않으면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아이들을 전전케 하여 부족분을 거침이 메꿔야 하는 거였다.

하다못해 며칠 만에 만난 가족끼리 밥 한 끼 먹으러 가도 사전예약은 엄마의 필수요건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족은 바쁜 구성원들의 일시적 모임이고 도시는 헐렁한 가족들의 대규모 집합체에 불과하다는 소리가 나올 법도 했다.

본보 6월 30일자 '인천시민 잠. 식사 '필수시간' 전국 최저' 기사는 인천 시민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척도가 된다. 시민 궁극의 목적인 행복한 삶의 초기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의 건강한 삶은 구성원 모두가 나눔과 책임이 공존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도시의 건강성 또한 일과 휴식, 생산과 소비가 균형 있게 맞물릴 때 도시적 안정감을 되찾는 것이다. 리영희 선생의 명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여전히 고뇌하는 도시 인천의 나침반이 된다. 날갯짓을 해야 비상할 수 있다는 것을, 좌우 퍼덕임이란 인연의 반복적 겹침 현상을 내재화 시키는 게 새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법칙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견지에서 육신을 살리고 영혼을 살찌우는 것은 결과적으로 도시의 책무가 된다. 문화시설을 늘리고 도시공원에 비중을 더 둬야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현재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바쁜데, 영화 한 편 안 봐도 살고, 연주회에 가지 않아도, 하물며 미술작품 하나 감상하지 않아도 살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건 사람의 삶이 아니었다.

선사 이전부터 짐승의 삶으로부터 일탈해 사람구실하려 했던 사건들이 스페인 '알타미라'와 '엘 카스티요' 동굴에, 최근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 동굴에, 우리 가까이 울주 '반구대' 등에 '사람의 증거'를 남긴 이유를 명확히 감지해야만 한다. 먹고 사는 건 찰라지만 예술은 영원히 남는다는 걸 실감케 하는 '인류의 표징'들이기 때문이다.

인천은, 도시 정체감은 존재하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맞는 말이다. 외세의 무단 점거기를 거쳐 한국전쟁의 잿더미에서 올라섰으니, 오늘날의 성장으로 보아 분명 상찬 받을 만한 도시로 변한 게 맞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존재는 유심과 유물의 균형 감각 넘치는 '밀당'에 의해서 '비상'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선배들이 도시를 일으켜 세우는데 총력을 했다면, 오늘날 그 후대들은 문화예술이란 영혼의 옷으로 인천만의 모양새를 갖춰야 하는 게 소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이 일방적으로 뿌려대는 거만한 문화 융성이란 깃발을 내리고, 소박하지만 시민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모종이 안전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권력의 운동성과 지향점이 바뀌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 선상에서 인천 시민의 대표적 문화 좌표로서 '인천문화재단'의 존재는 각별한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지난 십 년의 존재감은 인천 시민의 자존심 그 자체였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어엿하고 번듯한 재단의 설립을 학수고대 했기에, 타 도시의 문화재단과의 비교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문화라는 이름에는 인큐베이터의 의미와 각박한 자본주의 사회 속의 '여백'같은 존재이기에 등위를 매길 수 없기 때문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던, 이해할 수 없는 예술의 이름을 걸고 딴 짓거리를 하던 간에 그 가치와 평가는 미래의 인천 시민의 몫이다. 과거 어렵던 시절의 미혹한 시선으로, 다양하고 평가하기 어려운 예술의 세계를 현재에 접목시키는 건 분명 무리수다.

허접스런 '라스코' 동굴 벽화를 보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4만년을 기다린 끝에, 관람료 17유로를 내고 보려하는 현대 인류의 욕망에서 그 답이 그려지고 있다. 인천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정신없이 돌아가는 도시다. 인천문화재단, 아트 플랫폼, 트라이 볼, 부평 아트센터, 신트리 공원, 자유공원, 문학산, 계양산 그리고 황해… 거기에 인천의 영혼과 미래의 보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