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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골 대통령의 회고록에는 동서냉전을 서방세계의 일방적인 승리로 이끌고 수 세기 동안 크고 작은 전쟁으로 수백만 명의 목숨을 서로 잃은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과정이 자세하게 그러나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데나워 독일 수상은 나의 재집권이 에피소드가 아닌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나를 만나자고 요청했다. 나는 그를 1958년 9월 콜롬베에 있는 나의 개인 저택으로 초청했다"

▶"그는 우리 두 사람의 회담에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늙은 프랑스인과 나보다 더 늙은 독일인은 두 나라 국민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만남을 위해서는 오히려 화려한 궁전보다는 가족적 분위기가 더욱 좋았다. 나와 아내는 독일 수상에게 나의 사저 라 부아서리에서 소박하지만 정중한 대접을 했다"

▶아데나워 수상은 말했다. "드골 장군을 찾아온 것은 귀하야말로 역사의 흐름을 전환시킬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 두 민족은 서로 정중한 협조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관계에 직면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두 나라뿐 아니라 전 유럽의 거대한 이익을 위해서는 영구히 양국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고 반대로 서로 떨어져 불행을 초래하는 적대관계로 빠져버릴 수도 있다….드골 장군!! 두 나라의 실천적 화해를 위해서 나는 괘히 장군과 함께할 각오가 되어있소"

▶독일 지도자에게 드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이 나의 집에 함께 있다는 것은 프랑스가 독일에 대해 새로운 정책을 시도해야 할 순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1870년, 1914년, 1939년에도 게르만 민족의 야심으로 무서운 시련을 겪은 나라다. 그러나 오늘의 독일은 점령되었고 파괴되었으며 국제적인 지위도 심히 추락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으로 미루어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 후 아데나워와 드골은 15차례의 회담과 두 나라 각료들과 전문가들 간의 긴밀한 협의를 거쳐 유럽연합(EU)의 기초가 된 유럽경제협력기구(EEC)를 탄생시켰고 독·불 우호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쓰라린 과거 역사를 극복하려는 혜안과 용기를 겸비한 지도자들을 가졌던 국가들이었고 그들을 선택한 현명한 국민들이 있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