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금빛평생교육봉사단 자문위원

새벽 첫 고속열차를 타고 장모 팔순잔치에 갔다. 장인의 타계 후, 홀로 된 장모의 80세 생일이었다. 유교의식을 고수했던 장자의 며느리로서 평소 집안 대소사를 준비해왔던 장모의 팔순을 현대식 뷔페로 차려드렸다. 멀거나 가까운 곳에서 찾아온 친인척들이 덕담과 안부, 사진을 남겼다. 5월, 가정의 달, 어버이 날 가족행사를 더불어 치른 기분이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노인복지관, 노인대학 등에서 '힐링 민요' 또는 '백세 인생' 제목으로 회자된 '장수 아리랑'이 어르신들의 합창이 돼 흥을 돋았다. '8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라는 가사에 공감했다.

여러 버전으로 불러진 이 노래의 가사 중에는 '80세에 저승사자가 날 데리러 오거든 부모님이 살아계셔서, 88세에는 나이가 팔팔해서, 100살에는 저승보다 이승이 좋아서 못 간다'는 등 밀양 아리랑 곡조에 맞춰 장수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담아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젊은 노인들이 타고난 수명이라는 천수(天壽)를 누리게 되는 날들이 임박했다는 메시지다. 통계청의 생명표 등에 따르면 올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1.7세이며, 산수(傘壽)를 맞는 노인들의 기대수명은 90세에 달하고 있다. 대중가요에서도 '무병 장수 사랑 행복 꿈꾸며, 백세를 향하여 멋지게 살아갑시다' 또는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며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시대를 풍미하고 있다.

고령화의 긍정적 의미로서 인간의 지속적인 욕망이었던 장수사회가 현실이 된 것이다. 불과 반 세기 전만해도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60세를 넘지 못했다. 환갑을 넘기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수명이 짧았던 시절, 부모의 환갑잔치는 자녀와 집안의 경사였지만 요즘 환갑의 의미는 퇴색했다.

노화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신화와 종교적인 관심에서 '장수' 혹은 '회춘'이라는 주제에 접근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선지자들은 900세 이상을 살았다. 아담은 930세, 셋 912세, 므두셀라 969세, 노아 950세 등 장수를 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저너머(beyond) 어딘가에 장수촌이 있다고 믿었다. 러시아 코가서스, 파키스탄 훈자, 에콰도르 빌카밤바 촌락 등이 100세 이상을 사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또 1500년대 초반, 프랑스의 폰세 데 레온이 청춘의 샘을 찾아 불로장생 회춘했다는 설화도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번지점프대가 있다. 216m 높이의 블로크란스 리버 브리지에 설치한 번지점프에 도전해 96세의 모흐르 키트 할아버지가 성공한 일도 있다. 90대 노인이 번지점프에 도전하는 시대에서 70대는 청춘 이전의 연령대가 아닌가.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100세 이상 노인은 1만5천 여 명으로 증가했다.

공식 기록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123세의 프랑스 잔 칼망 할머니였다. 미국 LA에 있는 고령자 조사기관 노년학연구그룹(GRG : Gerontology Research Group)은 세계 최고령은 현재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 사는 제럴린 탤리 할머니로 이번 달 23일 116세 생일을 맞는다고 발표했다.

전통적으로 연령을 기준으로 노인을 구분하기도 한다. 애칠리(Atchley, 1985)는 젊은 노인을 60~74세, 보통노인을 75~84세, 고령노인을 85세 이상으로 분류했다. 우리나라는 노인이 되는 의식 정도로 회갑년을 기념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연령(曆年齡)이 노인을 분류하는 일률적인 잣대가 될 수는 없다. 노년의 인식은 개인의 노화과정에서 차이가 있고, 사회환경의 변화 그리고 주관적인 관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주민등록번호는 보험 가입에 필요한 용도가 됐을 뿐이다. 몇 년생부터 노인이라고 규정할 수가 없다. 생리 신체적 노화를 거역할 수는 없지만 노화는 개인에 따라 속도의 차이를 나타낸다. 오늘날 사람들은 단순히 장수에 대한 관심보다는 '건강수명'과 같은 성공적인 노화에 더 큰 삶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현대의 노인은 높은 학력과 경제적 여력을 갖추고 젊은 세대들의 문화를 공유하는 노노(NO 老)세대이다. 단지 인터넷을 사용할 줄 아는 노(老)티즌을 넘어서서 불로그, 카페, 홈페이지 운영 등 인터넷 소통 역량을 발휘하는 웹버(Webver : Web과 silver를 합성한 단어)족으로 불리며 디지털 라이프를 즐긴다.

황혼육아에 얽매였던 시간을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젊은 외모와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 매력적인 할머니를 지칭하는 '어번 그래니(urban-granny)' 세대이기도 하다. 어버이 날, 급속한 고령화 시대의 변화 속에서 가족을 위한 희생의 아이콘이었던 어버이를 회상하며, 나의 노년기를 짚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