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전유물 느와르 장르 여자배우 투톱 주연 눈길
인간 군상 생존법칙 연기 '조연' 묵직한 존재감 공감

오랜 만에 충무로에 여성 배우들의 투톱 주연 영화가 탄생했다. 그것도 남성 배우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느와르(암흑가 범죄영화) 장르다.

사실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여배우들이 전면에 나선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마저도 멜로나 공포, 코믹가 아닌 장르에서 여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경우는 거의 없다. <차이나타운>에서 냉혹하고 차디찬 보스 '엄마' 역할을 맡은 김혜수 역시 제작보고회에서 "여성이 주체가 되는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여성에게 비중이 있어도 남성 배우를 보조해주는 역할이 많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실 다른 영화였다면 김혜수의 캐릭터는 으레 남자배우들의 몫이였을 것이다.

영화 <차이나타운>이 기존의 범죄 드라마와 차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여자가 지배하는 조직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한준희 감독은 여성 캐릭터가 차이나타운의 절대적인 지배자로 군림한 설정에 대해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강한 것 같다"며 "여자들은 결정적인 순간과 중요한 순간에 변명도 하지 않고 더 강력한 결단을 내린다"는 말로 그 이유를 밝혔다. 그의 말처럼 영화 속 '엄마'는 결정의 순간에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다.

영화 <차이나타운>은 지하철 10번 보관함에 버려진 한 아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이가 흘러 들어간 곳은 다름 아닌 차이나타운. 인간을 쓸모 있음과 없음으로 분류하는 이 비정한 세계에서 아이는 '엄마'라 불리는 여자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식구들을 만난다.

영화의 주요 공간이 되는 차이나타운은 세상의 이방인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이민자 출신으로 차이나타운의 대모로 군림하고 있는 '엄마(김혜수)'와 지하철 보관함에 버려진 '일영(김고은)'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과거도 존재하지 않고, 진짜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그녀들은 '차이나타운'에서 가족과 새로운 삶을 얻고 존재 이유를 찾게 된다.

이들은 또 다시 세상에 버려지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남아 차이나타운을 지배한다. '일영'은 '엄마'의 명령에 따라 돈이 되는 일은 뭐든 하며 돈을 갚지 않는 채무자에게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엄마'는 돈을 회수하기 위해 가리는 일 따위는 없다.
차이나타운에서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식구'라는 이름으로 묶여 살아가는 이들은 드라마가 이어질수록 내면에 자리하고 있던 위험한 모습을 드러내며 내재된 생존본능을 드러낸다.

영화 <차이나타운>의 원제목은 <코인로커 걸>이었다. '코인로커걸'은 극중 지하철 동전 물품보관함(코인로커) 10번에 버려진 일영을 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개봉을 앞두고 타이틀을 '차이나타운'으로 변경하고 개봉을 확정지었다.

한 감독은 "극중 코인로커 걸인 일영이라는 특정 인물도 중요하지만, 영화는 인간군상, 세대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며 "다소 포괄적일 수 있는 제목이지만 모든 캐릭터와 배경을 담아낼 수 있는 '차이나타운'으로 이름을 바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간군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조연 배우들이 영화 속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뿜어낸다.

안선생 역으로 출연한 이대연은 엄마와 함께 마가흥업의 중심을 잡는다. 엄마의 젊은 시절을 함께 한 유일한 멤버,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그는 주업무인 장기 밀매를 담당하며 일말의 감정 동요 없이 묵묵히 자기만의 일을 해내고 결정적인 순간 잔혹한 본성을 드러낸다.

일영과 쏭(이수경)의 단골 오뎅 트럭의 주인 우씨를 연기한 정석용의 정체는 엄마의 돈을 세탁해주는 환전상으로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차이나타운 사람이다. 하지만 숨쉴 틈 없는 일영의 일상에서 유일하게 사람 냄새 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엄마에게 쫓기며 목숨을 위협받는 일영이 찾아왔을 때 냉정하게 내치지도, 선뜻 도움을 주지도 못하는 착잡한 심경을 실감나게 연기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낸다.

차이나타운이라는 특정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만의 생존법칙을 담아낸 영화 <차이나타운>, 배우 김혜수와 김고은을 비롯해 박보검, 엄태구, 고경표, 이수경, 조현철, 이대연, 조복래 등이 출연한다.


/김상우 기자 theexodu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