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24회 올림픽대회에는 대회사상 최초로 159개국의 8391명에 달하는 선수들이 참가하여 사상 최대의 올림픽으로 기록되었다. 80년의 모스크바 대회와 84년도의 로스앤젤레스 대회가 동서 진영의 대립으로 반쪽 대회로 전락했지만 분단국의 수도 서울올림픽에는 모든 나라들이 참가하는 대회로 승화되었다. 위기에 봉착했던 올림픽 운동도 서울대회를 계기로 확고하게 부활했다. ▶88서울올림픽대회가 결정되었던 독일의 바덴-바덴에 1981년 유치위원회 대표로 참가했던 필자는 현장에서 서울이 들러리를 서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비롯하여 국제연맹(IF) 회장들과 세계의 주요 언론매체들도 일본 나고야가 개최지로 이미 확정된 것으로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덴-바덴 총회가 있기 꼭 1년 전에 IOC 수장이 된 사마란치 위원장이 나고야의 단독 후보가 된 무대에 서울을 참여시켜 흥행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그러나 바덴-바덴에 파견되었던 유치단은 불철주야 IOC 위원들을 상대로 득표 활동을 폈다. 분단국에다가 일본에 경협차관을 요구하고 있던 약점을 극복하고 52:27표의 차로 나고야를 물리치고 개최권을 따낼 수 있었다. 유치단원들의 활동에 대한체육회장을 지낸 박종규 전 청와대 경호실장과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던 정주영씨의 활약에 힘입은 바 크다. ▶1981년 바덴-바덴에서 예상치 못한 패배를 맛본 일본은 그 후 여러 도시들이 올림픽 유치를 희망했으나 중앙정부와 일본체육회(JOC)의 간곡한 만류로 꿈을 접었다. 올림픽대회의 규모가 증대되면서 개최 도시의 부담이 커진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으나 나고야 같은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일본인들다운 와신상담(臥薪嘗膽)적 신중성으로 본다. ▶일본은 지난해 도쿄올림픽 50년 만에 2020년 제2차 도쿄올림픽 개최권을 무난하게 따냈다. 중국에게 G-2 자리를 빼앗기고 장기 경제침체국면을 올림픽을 통해서 반전하겠다는 아베 수상의 작품이다. 지난주 일본 경제신문은 도쿄올림픽 후원사들의 협찬금액이 1조4000억원을 초과하고 있고 많은 기업들이 후원사가 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 비해 약진하는 일본의 저력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