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200만명 '대규모 해고' 여전 … 보통 사람들을 위한 노동운동 해설서
쌍용차·콜트악기 등 '긴박한 경영상 필요'로 해직한 이들의 투쟁 이야기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1970년, 22살의 젊은 노동자의 분신이 있은지 45년이 흘렀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전태일 열사의 외침. 반 세기에 달하는 시간이 흘렀지만 전태일이 다시 살아 과연 노동자들의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되묻는다면 부끄럽기 그지 없다.

오는 5월1일은 125주년 노동절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노동현실은 연일 악화일로에 빠져있다. 정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매년 경영상 이유로 퇴직하는 사람이 90만명, 계약 만료로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이 90만명, 폐업·도산·공사중단으로 일을 못하게 되는 사람이 20만명이다. 결국 한 해에 회사에서 잘리는 사람이 정규직 100만명, 비정규직 100만명, 합쳐서 200만명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비정규직의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기존 근로기준법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노동자를 해고하지 못하게 돼 있는 것을 사용자 마음대로 하는 성과평가를 통해 '저성과자'라는 이유를 만들어 해고를 가능하게 하겠다는 속내를 보이고 있다.

5월1일 노동절을 앞두고 다시금 <전태일 평전> 꺼내들고 관련 책으로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섬과 섬을 잇다>, <이창근의 해고일기>을 소개하려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편집자주

여전한 근로기준법 사각지대·대규모 해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2014년 6월을 기준으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체 노동자는 348만에 이른다. 이는 전체 노동자 가운데 19.1%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특수고용과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단결권·교섭권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가며 준수하라고 외쳤던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이 지난 2006년 쓴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에서 저자는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그 어떤 제도권 교육과정에서도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조합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고 그렇게 성장한 우수한 인재들이 대기업 노무관리자가 되면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노동조합을 탄압한다"며 "헌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신성한 권리인 노동조합을 짓밟으면서도 이 사람들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문제"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책이 출판된 지 1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대규모 해고가 자행되고 있다.
근로기준법 24조에 규정된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 따라 지난해 KT는 8300여명을 내보냈고, CJ제일제당은 1200여명을 한꺼번에 줄였다. LG디스플레이 1051명, 삼성생명 996명, LG전자 823명 등 재벌들이 앞장 서서 대규모 해고를 했다.

대법원은 정리해고의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는 장래에 다가올 위기로, 정리해고 인원은 회사 맘대로 해도 된다고 판결했다. 이렇듯 온몸을 바쳐 일했는데 실적이 낮다고 사표를 강요당하는 현실에서도 정부는 해고 요건을 더 완화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런 정리해고의 문제는 회사가 어려워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10대 재벌, 81개 회사가 금고에 쌓아놓은 사내유보금만 250조원이 넘었다. 10대 재벌이 사놓은 땅도 60조원을 돌파했고, 내부거래 규모도 154조원으로 역대 최대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 6년 동안 가계소득 증가율은 26.5%에 그친 반면, 기업소득은 무려 80.4%나 급증했다. 노동자와 서민들은 빚잔치를, 기업과 재벌들은 돈잔치를 벌였다.

거리에서 싸우는 노동자들
정리해고의 4대 요건 중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제외한 ▲대상자의 공정한 선정 ▲노조 또는 근로자 대표와의 협의 ▲해고회피노력은 형식적 절차에 지나지 않았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역시 사용자가 회계조작을 통해 손쉽게 요건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 여러 해고 사례를 통해 드러났다.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섬과 섬을 잇다>와 <이창근의 해고일기>가 이러한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 의해 해고된 이들의 투쟁을 다룬 책들이다.

긴박한 경영상 이유로 수 천명의 직원들을 해고한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조가 사측의 감원 계획에 맞서 총파업을 시작한 것이 어느 덧 만 5년을 넘어 6년째에 접어들고 있고 그 사이 26명의 노동자들이 삶을 비관, 정부와 기업의 무자비한 행태를 비판하며 목숨을 끊었다.

인천에서도 이러한 해고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07년 4월에는 부평구에 위치한 콜트악기 공장 노동자 56명이 정리해고 됐고 7월엔 콜텍악기의 대전공장이 갑작스런 휴업에 들어가 이 공장의 노동자들이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었다. 그들은 지금 현재 3000일이 넘게 투쟁을 하고 있지만 복직의 길은 요원하다.

밖을 쳐다보면 생산성 떨어진다고 창문 하나도 없는 공장. '빼빠질'과 그라인더질, 기타줄을 당기고 피스 등을 박다가 40% 넘는 이들이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던 공장이었고 밀폐된 도장실에서 유기용제에 노출되어 현장 노동자의 59%가 직업병을 앓고 기관지 천식자가 36%, 만성기관지염 환자가 40%를 넘던 공장. 전태일 열사가 대변했던 평화시장 피복노동자들의 상황과 별다를 게 없던 게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이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하는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외치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던 22살 청년 전태일의 바람은 그가 죽은 지 45년이 되도록 요원하다.

<전태일 평전>에서 전태일은 일기에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人間像)을 증오한다"고 적었다. 60~70년대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노동자들의 모습은 2015년 현재도 여전히 그대로다.

125주년 노동절을 맞았지만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전태일의 바람이, 노동자들의 바람이 이뤄질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으로 믿고 싶다.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as one.(내가 공상가라고 당신은 말할지 모르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에요. 언젠가 당신도 동참하길 바래요. 그러면 세상은 하나되어 살아가겠죠. 존 레논의 Imagine 中)"

/김상우 기자 theexodus@incheonilbo.com

<전태일 평전> 조영래 지음, 전태일기념사업회, 340쪽, 1만3000원
<이창근의 해고일기> 이창근 지음, 오월의봄, 432쪽, 1만6000원
<섬과 섬을 잇다> 이경석·이창근·유승하·김성희·하종강·마영신·이선옥· 김홍모·김중미·김수박·서분숙·박해성·연정 지음, 한겨레출판사, 280쪽, 1만5000원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하종강 지음, 후마니타스, 370쪽,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