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석 인하대 HK교수
▲ 조강석 인하대 HK교수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한반도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흥미로운 점들이 많이 눈에 띈다. 100년이 더 지난 지금 우리가 봐도 낯설어 보이는 풍경과 생활상이 그들에게는 어떻게 보였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더군다나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이제 막 문을 열기 시작한 '은자의 나라'로 불리던 조선의 모습은 여러 가지로 낯설고 이국적인 것이었으리라. 그런데 이 짐작을 무색하게 하는 공통된 증언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서울의 관문'으로 불리던 제물포의 첫인상이 그것이다.

당시 외국인들이 이 나라의 수도인 서울을 방문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 가야 했던 관문이 바로 제물포였다. 서울에 이르는 가장 일반적인 경로는 일본 나가사키에서 부산항을 거쳐 제물포에 도착하고 다시 여기서 서울로 향하는 것이었다. 물론 중국 쪽에서의 접근도 가능했는데 베이징 인근의 항구인 치푸( 지금의 옌타이煙台)에서 배를 타고 제물포에 도착하는 경로도 이용되었다.

제물포에서 서울에 이르려면 40㎞쯤 되는 육로를 통해야 했는데 1899년에 인천-노량진 사이의 기차 노선이 개통되고 이후 1900년에 한강철교가 준공된 뒤에는 인천-서대문 사이를 있는 경인선이 중요한 이동수단이 되었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나 당시 서울을 방문하려는 외국인들에게 조선의 첫인상을 선사한 것은 제물포였다. 그런데 그들이 처음 본 것은 제물포지만 그들에게 제물포는 조선의 항구가 아니었다.

1894년 겨울과 1897년 봄 사이 네 차례나 조선을 방문한 영국 왕립지리학회 최초 여성 회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1897)에서, 제물포에서 처음 접하게 되는 것은 조선이 아니라 일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인화가 번역한 책에서 그녀의 말을 직접 옮겨 본다. "독자들은 아마 한국인은 제물포 어디에 있는가 라고 의아해 할 것이다. 사실 난 그들을 잊어버렸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비중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인 거주지가 서울로 가는 큰 길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인의 마을은 그 바깥에 위치한다. 영국 교회가 서 있는 언덕 아래로부터 그 언덕을 타고 오르며, 더러운 샛길을 거쳐 닿을 수 있는 모든 암층 위에 한국인들의 토막이 꽉 들어차 있다. 주요 도로에서는 아버지들의 무기력을 본뜨고 있는 때 묻은 아이들의 조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인상이 이사벨라 버드 비솝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활동사진으로 자신이 방문한 여행지의 모습을 찍고 이를 바탕으로 강연을 벌인 것으로 유명한 버튼 홈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조선 최초의 활동사진 상영 기록을 남긴 것으로 알려진 버튼 홈즈 역시 제물포의 첫 인상에 대해 도시의 반은 유럽풍이고 반은 일본풍이며 보잘 것 없는 원주민 구역도 있다는 말을 남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나가사키 쪽에서 부산을 거쳐 제물포에 왔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도, 중국 치푸에서 배를 타고 제물포에 왔던 버튼 홈즈도 공히 일본 우편선박회사의 배를 타고 일본인 관리와 중국에서 파견한 영국인 세관원 등이 있는 '반 유럽풍 반 일본풍' 항구에 처음 발을 디뎠기 때문이다. 이 둘의 기록 모두 1905년이나 1910년 이전의 일이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나 버튼 홈즈는 그래도 각기 세계 각지의 풍물지와 민속지를 기록하는 학자거나 활동사진을 이용해 여행지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담고자 하는 관찰자로서의 태도를 유지한 사람들이다.

또한 이들은 여정을 계속 하면서 '은자의 나라'의 속을 더 깊이 들여다볼수록 새삼 조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한 사람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러일전쟁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조선에 대한 인상기를 남긴, <강철군화>의 작가 잭 런던이 드러낸 모멸에 가까운 태도와 비교를 한다면 그 차이는 확연하다. 그러나 그런 이들의 눈에도 서울의 관문인 제물포는 우리가 사진으로만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남들의 도시였다.

객관적 관찰자로서의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한 버튼 홈즈의 조선방문기 초판의 마지막 단락은 일종의 전망으로 채워져 있다. 대한제국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지배권 다툼에서, 전기(電氣)를 가진 미국, 종교를 지닌 선교사들, 군대와 상술의 일본, 외교와 인내의 러시아, 무희와 지관(地官)을 가진 대한제국의 황제 중 누가 우위에 서게 될까를 물은 뒤 그는 러시아와 일본이 유력한 세력이되 아마도 승자는 "용감하고 능력 있고 예술적인" 일본의 자손들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2015년 4월 현재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정황이 심상치 않다. 자존심과 실리, 역사와 계획을 모두 아우르는 주변국들의 외교가 시시각각 전개되고 있다. 지리상의 대척점에서 교민을 위로하고 패션쇼를 독려하는 것보다 시급한 일들이 널려 있다.

시인 정지용은 <백록담>에서 "우리 새끼들도 모색(毛色)이 다른 어미한틔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고 썼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의 고단함을 우리는 여실히 알고 있다./ 조강석 인하대 HK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