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약장수]

아픈 딸 위해 홍보관 취직한 젊은 가장 '눈물겨운 생존기' 
노인 외면 사회·자식에 일침 … 김인권·박철민 생생한 연기

세상 어떤 자식이 매일 엄마한테 노래 불러주고 재롱 떨어줘?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고독사'라는 형태의 죽음이 새롭게 등장했다.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불렸던 '고독사'는 처음에는 홀몸노인들의 외로운 노년의 문제였지만 취업이 어려운 요즘엔 그 대상이 전 연령대로 확대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영화 <약장수>는 '효(孝)'가 거래되는 세태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아들을 연기해야만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는 앞날이 캄캄한 젊은 아버지 일범(김인권)이 '먹고 살기' 위해, 또 '아픈 딸'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홍보관에 취직해 아들을 연기하는 눈물겨운 생존기를 통해 이 사회를 관통시키는 메시지를 담아냈다.

뉴스와 여러 경로를 통해 대중에겐 친숙하지만 그 속이 알려진 적이 드문 '홍보관 약장수'가 소재라는 점에서 영화는 관객들의 흥미를 이끌어낸다. 충무로에서 믿고 볼 수 있는 두 배우, 박철민과 김인권이 다시 한 번 만났다는 점에서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리 유쾌하지 않다. 노인을 대하는 사회와 자식들의 태도, 평범한 가장의 말 못할 고충이 담겨 구슬프고 계속해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자식보다 낫다"고 당당히 말하는 홍보관 점장 철중(박철민 분), "안 바쁠 때 두 시간만 애미랑 놀아주지 않을래?"라며 조심스럽게 아들에게 말하는 옥님(이주실 분)의 대사가 바쁘다고 부모님을 외면한 자식과 현재의 가족 형태, 노인을 대하는 사회의 다소 소극적인 태도에 일침을 가한다.

서민의 생활고, 독거노인의 고독사 등 한국 사회의 실체를 군더더기 없이 풀어낸 이야기는 사회고발 프로그램을 방불케 할 만큼 올곧고 투박한 한편,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현한 배우들의 연기는 내내 생생하다.

일범을 연기하는 김인권의 연기력은 우리 스스로가 일범의 상황에 놓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고, 연기가 뛰어난 탓인지 캐릭터가 워낙 좋은 것인지 모를 정도로 그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영화 <약장수>의 '페르소나'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박철민이 맡은 철중은 악역이지만 악역이 아니다. 그가 하는 말 중 옳지 않은 말은 없다고 느껴질 수준이다. 그는 순수하게 '돈'에 움직이는 사람이고 상대방이 자신의 의도대로 돈을 벌게 해주기만 한다면 그 누구보다 천사 같은 모습으로 다가간다. 극 중간에 일범과 철중의 갈등 장면에서는 일범보다 철중이 '옳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의 연기는 무시할 수 없는 내공을 보여준다.

'약장수'가 주는 사회적 메시지는 일목요연하다. '떴다방'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늙음'을 배척하는 사회가 나쁘다는 것을 말한다.

조치언 감독은 '약장수' 언론시사회에서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놀랍게도 '떴다방'의 순기능들을 발견하게 됐다"며 "결국 문제는 '떴다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롯한 '자식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배우들의 연기 만큼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강렬한 영화 <약장수>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동시에 개봉하는 탓에 상영관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할까 걱정이다. 이 걱정이 기우로 끝나길 바란다.

/김상우 기자 theexodu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