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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 CNN방송에서 한국의 10대 강점을 보도한 적이 있다. 다 알고 있던 소재들이지만 그래도 국제적인 방송사가 보도를 하니까 느낌이 새삼스럽다. 몇 가지만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는 스마트폰 보유율과 활용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신용카드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나라이며, 노동시간이 OECD국가에서 가장 길고, 폭탄주와 같은 특수한 음주문화가 있는 나라이며, (남자들을 포함해) 세계에서 성형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 세계 여자골프 대회를 석권하는 나라 등등이었다. 어느덧 우리나라는 세계적 언론매체들이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거론할 정도로 큰 나라가 된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국내에서보다 외국에서 더 인정받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유럽 연합(EU)에서 신간 서적을 출판할 때는 2~3개국의 언어(외국어)로 발간하는 게 관행인데 최근 한국어가 거기에 들기 시작했다. 미국 헐리웃 영화도 한국 시장에서 인정받아야 성공할 수 있다며 서울에서 동시 개봉을 하는 일이 자주 있다. 미국연방은행이 통화정책을 변경할 때 그 부정적인 파장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가 한국과 대만이라고 금융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평가한다.

그 뿐이 아니다.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잡지인 이코노미스트지가 세계 167개국을 대상으로 정치민주화, 선거공정성, 정부투명성 등 10개 항목을 조사해 '완전민주국가(Full democratic country)' 30개국을 선정했는데 한국은 그 리스트에 당당히 20위를 찍었다. 놀라운 것은 일본이 우리보다 낮은 23위, 프랑스가 저 아래 28위에 랭크되었다는 점이다. 하기는 국가 최고 권력자에 해당하는 대통령이나 검찰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자기 발로 곱게 집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엄한 나라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전 국토의 70%가 산악인 나라에서, 그것도 전쟁으로 남북한이 완벽하게 허물어진 나라에서 무역규모가 세계 8위에 올랐고,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근접했으며, 국가총생산이 13위에 오를 정도라면 가히 대한민국은 인류역사상 신화적인 존재라고 해도 그렇게 큰 과장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스마트폰을 만드는 나라, 세계 자동차 시장의 20%를 점유하고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밖에서 그렇게 칭찬을 받고, 경탄의 눈으로 쳐다보는 대한민국이 왜 유네스코의 행복지수 조사에서는 세계 최하위 그룹에 끼는 것인가. 무엇이 그리도 급해서 자동차 1대 당 사고율이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얼마나 바쁜 일이 많으면 1인 당 독서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1주일에 26분밖에 안 되는 것일까. 얼마나 힘든 일이 많으면 OECD국가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 기록되고 통음할 한이 뭐 그다지도 많다고 1인 당 음주량이 세계 1위에 올랐을까. 밝은 쪽과 어두운 쪽이 이토록 역동적으로 대비를 이루고 있는 나라는 세상에 대한민국 외에 없다.
극대 극으로 나누인 것은 이 나라의 좋은 기록과 나쁜 기록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그 폭과 깊이가 넓고 깊다. 분석하기 좋아하는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물질적 발전을 정신세계가 따라가지 못한 결과'라고 진단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경제발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신문화인데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정신문화는 아이돌 같은 대중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영화관과 카페는 우후죽순 늘어가는 데 고급문화의 상징인 책방은 설자리를 잃어 하나 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남아있는 서점의 전시대 가장 가운데 자리는 교양을 다룬 책이 아니라 실용서적과 처세서 같은 가벼운 베스트셀러들이 차지하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식으로 젊은이들의 영혼에 모르핀을 주입하는 달콤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아플 수도 없을 만큼 큰 짐을 지고 있는 중년의 가장'이나 '날이 갈수록 더 아픈 황혼의 노년'에게는 사치로만 보인다. 청춘을 낭만으로 포장해 젊은이들에게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것은 사회의 정신건강에도 이롭지 못하다.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키워야 할 오늘의 젊은이들은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남을 탓하고 위안을 받으려는 나약함에 빠져 또 다른 갈등을 잉태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갈등이 '물질적 발전을 정신세계가 따라가지 못한 결과'라는 진단에 부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러나 경제발전 이전의 시대라고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념적 갈등은 이 나라 건국사와 줄기차게 함께 해온 악성 유물이다. 소모적 갈등이 없었던 아주 예외적인 순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군사독재 시절이었다. 그 주인공의 공과 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많은 국민들은 '유신'이전, 한 때 나라를 하나 되게 했던 그의 강력한 리더십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리고 갈등에 지친 많은 국민들은 향수처럼 그런 리더십의 지도자가 이 땅에 다시 나타나기를 요즘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언제쯤 그런 지도자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