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창작센터와 예술가들 - 오십개의 방 오만가지 이야기 [끝]
9. 박주희 경기창작센터장을 만나다
▲ 박희주 경기창작센터장. /사진=이재훈 작가

예술가 발견·창작 지원

3차례 리모델링후 이용 급증

고립 지역의 제한적 환경

색다른 작품활동 계기되기도

즐기고 구상하고 표현하는

경기도 행복충전소 역할 추구



경기창작센터는 하늘이 열리고 새로운 시간이 쏟아질 때, 아직 말하지 않은 것, 존재하지 않은 것을 만드는 영감의 바다다. 작가들은 이곳에서 교류하고, 즐기고, 구상하고, 표현한다.

선감도의 포도향과 바닷가 갯내음은 지금까지 경험하고 느껴보지 못한 오감을 톡톡히 일깨운다. 그분(뮤즈)이 찾아오기에 그만인 시공간이다. 그 때 작가들은 창작의 꿈을 펼치고 예술을 탄생시키는 것은 아닐까.

입주 작가들의 삶은 진퇴를 거듭하는 서해안의 들물(밀물)과 날물(썰물)을 닮았다. 어떤 작가는 들물처럼 밀려오는 영감으로 완성한 창작작업의 흔적을 모두 지우려고 한다. 또 다른 작가는 자신의 창작물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바다와 하나가 되는 생성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들물과 날물은 어김없이 진퇴를 반복된다. 자연이 커다란 캔버스 같은 갯벌을 내주면 작가들은 다시 그 위에 창조물을 빚는다. 그리고 새가 갯벌을 떠날 때 입주작가도 새로운 영감의 둥지를 찾아 떠난다.

입주작가들을 위한 행정 지원을 책임지고 있는 박희주 경기창작센터장을 만났다. 그에게 지원 프로그램과 운영 방향 등을 들어본다.



▲창작센터는 어떤 곳인가
-이곳은 국내외 역량있는 예술가를 발굴하고, 그들에게 안정적인 창작환경을 지원해 주는 국내 최대규모의 아트레지던시 기관이다. 우리가 여가생활을 하며 즐기고 누리는 문화와 예술의 근간은 바로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에서 비롯된다. 창작센터는 바로 이 예술가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이들의 활동이 사회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일상속에서 도민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기회를 주려고 한다. 그래서 3차례에 걸친 리모델링 끝에 전시장과 교육시설, 식당 등의 공간을 확보했다. 그 결과 직장인 그룹이나 단체학생을 대상으로 숙박형 창의예술교육도 가능하게 됐다. 게다가 이 지역에서 입주예술가들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어 경기 서남 연안권 지역의 문화예술 명소화를 장기적으로 꿈꾸고 있다.



▲추구하는 지향점은
-즐기고, 구상하고, 표현하는 레지던시를 추구한다. 예술가들이 직접 기획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참여자들과 만나서 예술과 삶에 대한 새로운 자극과 잠재력, 경험을 나누는 현장을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경기창작센터가 있는 대부도를 중심으로 시흥, 안산, 화성 등 지역에 최적화된 프로젝트를 개발해 경기도의 상상창의발전소와 행복충전소로써의 역할을 겸하고자 한다. 또한 국내외 유관기관과의 지속적인 네트워크 확장으로 국내작가들에게는 해외로 뻗어갈 수 있는 기회를, 해외작가에게는 한국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국제교류의 기능도 한층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요약하자면, 예술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그들의 창의적 사고와 작품을 응용해 대안적 예술교육콘텐츠를 개발하는 창의예술교육, 그로인한 교류와 소통의 장이자 지역문화중심 공간으로 거듭나 도시재생의 촉매역할을 하고자 한다.



▲차별성은.
이곳을 거쳐간 작가들의 경험담을 통해서 차별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2011년 입주했던 네덜란드 설치예술가, 이데 레크만(Iede Reckman)은 "도시의 익숙함에서 멀어져 동떨어진 섬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다시 구상할 수 있는 벅찬 임무 같은 것?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값진 추억과 영감으로 보상받겠죠"라고 얘기했다.
그의 설치작업의 주재료가 대부도 김과 뒷산의 대나무였던 것만 보아도 그의 표현은 이해된다. 이데(Iede)는 레지던시 기간에 지역아동들과 김밥만들기와 대나무 피라미드 교육프로그램을 즐겨 진행했다. 작가가 떠난 후에도 <대나무피라미드>는 창작센터의 대표적인 체험교육프로그램으로 남아있다.
이처럼 예술가들에게는 즉흥적인 상황이나 제한적인 환경 덕분에 이전에 미처 예상할 수 없었던 흥미로운 영감의 단계를 마련하고, 고립된 지역에서의 재료공급이나 운반에 대한 부담감이 주는 한계점들이 오히려 전혀 다른 작품을 상상하고, 전환과 성찰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작가들에게 센터는 어떤 곳인가
-소설가 김훈은 2011년에 창작센터에 머물면서, 장편소설 <흑산>을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모두 썼다. 그에 따르면 입주 작가들은 들어내 보여야 할 절박한 내면을 가진 사람들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노력을 하다 떠나고, 떠난 자리에 또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는데, 그런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게 된 곳이 경기창작센터라고 했다.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향해,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곳. 새들이 갯벌을 떠나고 또 다른 새들이 찾아오듯이 경기창작센터는 예술하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같은 곳이다.



▲한쪽에 텃밭도 있던데
-텃밭가꾸기 프로젝트인 예술생태정원과 GCC아트농장은 입주작가들에게 또 다른 매력을 주는 곳이다. 이곳 농장은 단순한 먹거리 공급의 차원이 아니라 산업화된 도시인이 자연을 이해하며 인간성을 회복하고, 도덕성을 찾아가는 치유와 회복의 가치를 추구한다. 예술가들은 3월에 입주, 낯선 환경과 입주자 간의 서먹한 관계를 생태정원과 농장에서 텃밭을 분양받고, 매일매일 식물을 가꾸면서 어느새 익숙한 동료가 된다. 난생 처음 열심히 텃밭가꾸기에 몰두한 나머지, 작가인지 농부인지 헷갈릴 정도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자연과 노동이 주는 마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기쁨과 나눔의 시간을 선사한다.
집필 계획을 가지고 이곳에 입주했던 사회학자 노명우 씨는 다음과 같은 은유적인 소회를 밝혔다. "도시에서 싹만 겨우 틔웠던 메모라는 씨앗이 글농사를 통해 책으로 완성하는데, 장마철에 심었지만 여름내내 쑥쑥 잘 자라던 허브는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뜨거운 여름원고를 마무리하는 동안 바질은 스파게티의 맛을 완성하는데 도움을 줬고, 민트는 기꺼이 모히또의 재료가 돼 줬다."



▲중앙 작업실 앞에 방패연 형상의 시비 조각작품이 세워졌던데
-'산감학원 어린 넋을 위로하며'라는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이곳 선감도에 선감학원이 들어서 8~18세 소년 500여명을 강제 수용하고 인권을 유린했던 아픈 역사를 되새기기 위해 세워졌다. 조각가는 어린아이들이 연처럼 하늘 높이 날아가는 자유로움을 누렸으면하는 의지를 표현했고, 시인은 유폐된 섬에서 벗어나 밀물 치듯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선감학원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은 전시사무동 1층 '대부역사관(선감학원기록실)'에 옛 사진과 수집 자료 등을 통해 전시돼 있다.



▲작가들에게 불편한 점은
-개관 후 3년차까지는 작가들이 센터에서 머물면서 서로 교류하고, 영감을 받고,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거나 집필을 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고립돼 있어서 집중하기에는 좋았다고도 평가했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작품을 제작하고 완성하기에는 여러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단순한 재료 하나라도 구하려면 1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하니까 번거롭고, 전문적인 재료들을 주문해도 물리적인 시간이 걸렸다. 마냥, 느린 시간을 즐기라고 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러다보니 초기에는 창작을 위해 상주하는 작가들의 수가 많지 않아 7개동 중 3개동만 활용해 시설 이용률이 높지 않았다. 그래서 3차례에 걸친 공간 리모델링은 경기창작센터를 운영하는데 분명한 전환과 도약의 계기였다. 초기에 입주작가가 단기로 머무른 수치를 합산한 규모와는 달리, 현재는 실제 거주하는 작가가 두배 이상 늘면서 시설이용률이 대폭 늘어났다. 이들이 실제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공방시설, 목공실, 미디어편집과 출력장비, 판화실, 야외작업실, 재료실 등을 구비했다. 이제는 이곳에서 제작된 작품을 현장에서 직접 전시해서 리허설할 수 있는 전시공간, 완성된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전시장까지 완비했다. 작가들이 작업에 몰두하는데 부족한 부분에 계속 보완하겠다.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사진제공=경기창작센터

후원=경기도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