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례 차문화협회 명예이사장 타계
▲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28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귀례 차문화협회 명예이사장의 빈소를 방문,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학운동 조부 영향 … 茶·무형문화재 등 우리 문화 보존 앞장

차인 최초 문화훈장 수상 … 이희호 여사·유정복 시장 등 애도



▲ 인설 이귀례 선생
한국 차문화계의 거목이자 인천 문화계의 큰별 인설 이귀례(사진) 선생이 87세를 일기로 지난 26일 저녁 타계했다.

이귀례 선생은 지난해 말까지 규방다례보존회, 인천시박물관협회, 인천무형문화재연합회, 한국차문화협회를 일을 왕성하게 하던 중 몸져 누웠다가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인천중앙길병원 5층 특실엔 이희호 여사, 유정복 시장을 비롯해 1일까지 수천 명의 조문객이 찾아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인설선생은 일제강점기 말살되다시피 한 '우리 전통차문화'를 발굴, 재정립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한국의 차문화가 재조명되기 시작했으며 인천을 '차문화 도시'의 반열에 올려놓기도 했다.

1929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선생이 일평생 차문화에 전념한 것은 동학운동을 했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동학운동을 하는 손님들에게 차를 내어 주면서 자연스럽게 차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인천을 중심으로 하면서 전국을 아우르고 세계를 지향했던 인설선생은 인도, 스리랑카, 미국, 독일, 중국, 대만 등 해외에서 규방다례를 시연하고 전통 궁중의상 등을 소개하는 등 세계적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문화전령사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난 2002년엔 <한국의 차문화-우리 차의 역사와 정신 그리고 규방다례>란 책을 손수 집필했으며, 지난해엔 <조선시대 여성의 차문화와 규방다례>란 책을 펴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유작이 된 이 책은 한국차문화와 함께 여성생활사를 깊이있게 연구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설선생은 또 인천시무형문화재총연합회 이사장을 역임하며 '인천무형문화재교육전수관'을 건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인설 선생의 타계 소식을 들은 인천의 무형문화재들은 "이귀례 이사장님은 평소 우리 것을 잘 지키고 보존해야 하며 그런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며 "무형문화재의 큰별이 진 지금 무형문화재들은 정신적으로 매우 충격을 받은 상태"라며 슬퍼했다.

인설선생은 인천시박물관협의회 이사장을 맡으며 초기 9개관뿐이던 회원관을 26개관이 활동하는 단체로 성장시키기도 했다. 인설선생은 매년 세계박물관탐방을 통해 인천박물관인들의 시각과 안목을 키우며 인천의 박물관을 전국 최고의 박물관 반열에 올려놓았다.

매년 박물관축제를 통해선 인천시민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외국의 박물관 관계자들을 초청, 컨퍼런스 등을 개최하며 해 국위선양을 하기도 했다. 한국박물관협회가 전국의 지역협의회 가운데 가장 우수한 모델로 인천을 꼽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26일 빈소를 찾은 박물관 관계자들은 "고령에도 불구하시고 국내외 박물관탐방을 할 때면 가장 앞장서서 유물을 만나며 깊은 관심을 보이실만큼 호기심이 많은 분이셨다"며 "박물관인들은 이귀례 이사장님을 아주 오래도록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처럼 인설 선생은 무슨 일이든 일단 책임을 맡으면 선이 굵고 분명하게 일처리를 함으로써 인천은 물론,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제2회 초의문화상(1993),명예차문화대상(2002), 인천시교육대상(2002)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지난 2000년 국내 차인으로는 최초로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제35대 신사임당'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2년 전부터는 '백운거사 이규보선생 기념사업회'를 조직, 운영하면서 인천 강화의 고려시대와 이규보란 인물을 인천의 관점으로 조명하기도 했다.

많은 행사에서 자비를 들여 하는 것을 비롯해 평소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했던 인설 선생은 평소 "우리 할머니는 누가 찾아와서 줄 게 없으면 입고 있던 옷까지 벗어주셨다"며 '베풂의 철학'으로 사람들을 대하기도 했다.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선명할 철학으로 일을 할 때면 매우 치밀하고 꼼꼼했던 그였지만 사람들을 만날 때면 인자한 할머니처럼, 모든 것을 받아주고 품어주는 어머니였던 인설 이귀례 선생.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떠난 인설 선생의 노제는 2일 오전 8시30분쯤 연수구 자택 앞에서 있을 예정이며 이어 오전 9시부터 인천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강당에서 영결식이 진행된다.

유족으로는 아들 최승헌씨와 딸 최소연, 최소리, 최미리씨가 있다. 장지는 분당 메모리얼파크이다.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