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창작센터와 예술가들 - 오십개의 방 오만가지 이야기]
7) 이주와 정주 Ⅰ-국제레지던시 '교류'의 생성과 확장
▲ 요하이 아브라하미 '지역역사박물관'
▲ 지역협력프로젝트-조은지·박보나 '땅'
▲ 키카 니코렐라 영상 작품 중 스틸컷
▲ 유일한 이동수단 123번 버스 안
▲ 포도수확 일손 돕기
▲ 노인정 할머니들과 함께
▲ 쌍계사에서
짧게는 3개월 길게는 2년 국내·외 작가들 공동 거주
이동수단 버스 유일 '환경 고립' … 유대감 결속력 높여
예술적 시선·창작적 에너지 '작가·지역간 교류' 발전

경기창작센터는 작가들에게 짧게는 3개월 길게는 2년만 허용된 공간이다. 그렇다고 작가들이 잠깐 살며 창작하다가 떠나면 그만인 곳은 아니다. 그들에게 경기창작센터는 만남과 떠남의 교차로이면서 행복충전소다. 서로 교류하고, 영감을 받고, 아이디어를 스케치하고, 집필하는 곳이다.

지난 5년 동안 많은 해외 작가들이 경기창작센터에서 이주와 정주를 거듭했다. 물론 국내 작가들이 초청받아 해외 기관 입주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국제교류를 해 왔다. 그동안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으로 향하는 부푼 기대를 품고서 인천 공항에 도착한 해외 작가들은 그들의 목적지인 경기창작센터로 향하는 또 다른 국내 여정 속에서 일찍이 그 기대를 빗겨간 새로운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스스로 공항 리무진 버스를 찾아 타고 안산역까지 오는 두 시간, 그리고 북적거리는 안산역의 버스 정류장에서 선감도로 향하는 123번 시내버스를 잡아타고 또 다른 한 시간을 지나오는 동안, 낯선 여정 속에서 예민해진 긴장감은 새로운 주변 경관을 감상할 여유조차 쉽게 내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해 비로소 안도의 숨으로 그간의 긴장감을 쓸어내리는 순간, 지나치게 고요한 마을의 적막한 공기를 젖히며 유난히 크게 울리는 앞 집 개들의 짖는 소리만이 이들을 반기는 유일한 첫 인사가 된다. 해외 작가들은 인천공항에서부터 경기창작센터에 이르는 이러한 긴 여정 속에서 이미 경기창작센터의 레지던시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 들어서게 된다.

유독 많은 해외 작가들이 경기창작센터를 거쳐 갔던 지난 2010년 개관 첫 해에는 오는 도중에 길을 잃어 몇 시간 동안 헤매다 도착하는 작가들이 비일비재 했고, 심지어 온 가족을 대동해 아이들까지 데려오는 작가들은 더없이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했다. 그리고 경기창작센터에 들어선 이후에도 이들의 일상은 도착 전의 여정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다.

북남미, 유럽,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각 지에서 온 35여명에 이르는 해외 작가들, 그리고 이들과 동행한 가족들과 심지어 반려동물까지, 당시 경기창작센터는 '예술가들의 국제 교류의 장'이라는 비전을 넘어서 그야말로 작은 지구촌을 이루며 공동 거주 공간이라는 레지던시의 가장 현실적인 면모가 더욱 뚜렷하게 부각됐다.

가까운 주변에 작은 구멍가게는 고사하고 어떠한 편의시설도 없는 고립된 입지조건 속에서 한 시간에 한두 번 지나는 123번 버스가 유일한 이동수단이었기에 작업할 재료는 물론이거니와 작은 식재료를 구하는 것마저 수월하지 않았다. 일상의 고충을 안고 몰려드는 해외 작가들로 사무실은 늘 북적이는 민원실을 방불케 했고, 공식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마다 그 사이를 가로질러 뛰어다니는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곤 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직원들과 작가들의 일상은 더욱 깊숙이 연결될 수밖에 없었고, 물리적 환경의 고립으로 인해 오히려 작가들 간의 유대감은 더욱 강하게 결속돼 갔다. 더욱이 이러한 고립된 입지조건은 작가들이 자신들의 정주 지역에 더욱 주목하게 하는 요인이기도 했다.

경기창작센터가 위치한 선감도를 비롯한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섬'이라는 주제 하에 진행된 첫 지역협력 프로젝트는 입주 작가들 중 총 10팀의 참여 작가를 구성했지만, 이에 참여하지 않는 작가들도 지역조사를 위한 현장 답사나 워크숍에 적극 참여하면서 지역에 대한 상당한 관심을 드러내 보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지역 주민들은 동네를 배회하던 이방인들이 예술가였음을, 그리고 이들이 어떠한 작업을 하고 있는지를 조금씩 알아 가기 시작했다.

경기창작센터의 뒷산 기도터와 마을 노인정은 어느덧 작가들의 단골이 돼 할머니들의 지난한 삶과 함께한 지역의 이야기들과 할머니들의 손맛으로 차려진 거뜬한 한 끼 식사를 대접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한창 포도를 수확하던 철에는 작가들이 직접 포도밭에 나가 일손을 돕기도 했고, 새벽부터 낙지를 잡으러 가시는 마을 어른을 따라 갯벌로 나갔을 때는 우리 눈에 그저 넓게 트인 벌판이 주민들에게는 여러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음에 놀랐고, 어느덧 그 낯선 이름들에 익숙해져 갔다. 추석 명절에는 이웃 주민의 초대로 경기창작센터가 유일한 거처였던 해외 작가들이 푸짐한 명절 음식을 대접받기도 했고, 마을 주민들과 언어가 통하지 않음에도 이들은 용케도 마을에서 포도와 포도주, 심지어 밭에서 수확한 식재료까지 얻어오곤 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지역으로 향한 작가들의 시선은 이 지역의 일상을 가로질러 다양한 층위의 맥락들로 관통해 있었다. 123번 버스, 그 버스 노선에 있는 부동산들과 임시로 지어진 컨테이너 박스들, 러브 모텔, 펜션 타운, 시화 방조제, 지역의 역사, 그리고 심지어 기후까지, 이 지역에 부유하고 있는 극히 일상적인 소재들을 통해 작가들은 그 소재들이 머금고 있는 이 지역을,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보이지 않는 다양한 층위들을 드러내고자 했다.

일제시대 선감원장이 살았던 집을 지역의 역사박물관으로 제시한 이스라엘 작가 요하이 아브라하미(Yochai Abrahami)는 지역에 산재돼 있는 사물들로 영상과 설치 작품을 제작해 제국주의적 역사와 그 역사적 그림자 아래 여전히 존재하고 다소 불안정한 제국주의적 환영들을 제시했다.

브라질 작가 키카 니코렐라(Kika Nicolela)의 영상과 사진 작품은 시화 방조제 건설 이전의 지역 주민들의 기억과 함께 이와 교차되는 개발 속에 변화된 현재의 풍경을 밀물과 썰물의 조류적 흐름으로 은유화 했다. 이 외에도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이 섬은 결코 고립돼 멈춰 있지 않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흐르고 있는 삶의 양상들을 비추는 거울이자 소재이며, 이들이 정주하는 일상의 토대였다. 키카 니콜렐라는 지역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작업한 작품을 경기창작센터 이후, 아르헨티나와 스위스의 미술관에서 전시했고, 올해는 이 작품이 덴마크의 예술상 후보에 오르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리고 이 외에도 몇몇의 해외작가들은 이곳에서의 인연을 또 다른 지역에서 이어가고 있었고, 이곳에서의 작업을 새로운 지역에서의 새로운 소재를 통해 발전시켜 나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21세기 새로운 유목민의 전형으로서 예술가들의 이러한 이주와 정주는 끊임없이 작가들 간의, 작가와 또 다른 지역의 새로운 일상 간의 다양한 관계성의 교류를 생성하고 확장해 가는 과정 속에 닿아 있다. 마치 거미가 처음 뽑아 올린 한 올을 기둥으로 삼아 이쪽저쪽을 오가는 이동 속에서 순식간에 수십만 개의 줄을 이루게 되는 것처럼, 경기창작센터는 예술가들이 뽑아 올린 다양한 예술적 시선들과 창작적 에너지들을 지탱하기 위한 하나의 기둥이 돼 지속적으로 교차되는 수많은 교류의 선들을 생성시키고, 생성된 교류의 선들은 작가들의 또 다른 이주와 정주를 통해 점차 확장돼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개관 전부터 지금까지 경기창작센터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기되던 고립된 입지조건은 오히려 끊임없이 지속되는 예술가들의 이주와 정주가 남긴 자취들을 쉽게 증발해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층위들을 생성하고 쌓아갈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전 세계적으로 범람하고 있는 수많은 도심형 레지던시들 사이에서 경기창작센터가 지닌 특수한 가치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글·사진 오사라 독립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