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수 역대 최고령 출전 … 빼어난 활약에 은퇴반대 서명운동도
▲ 22일 호주 멜버른 렉탱귤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8강전 한국 대 우즈베키스탄 경기. 연장 후반 차두리가 드리블 돌파 뒤 손흥민에게 공을 찔러주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아시안컵 결승전을 마지막으로 차두리(서울·사진)이 대표팀과 이별한다. 차두리는 오는 31일 한국과 호주와의 2015 아시안컵 결승전을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한다.

차두리는 지난 26일 2015 아시안컵 준결승까지 총 74번의 A매치를 치르며 4골을 기록하고 있다.

차두리의 국가대표 데뷔는 지난 2001년 11월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차두리는 고려대에 선수생활을 하던 중 히딩크 감독의 눈에 들어 대표팀에 발탁됐다.

비록 김남일(교토상가)과 교체되 5분여동안 뛰는데 그쳤고, 팀도 0대 1으로 졌지만 그 후 차두리는 꾸준히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그후 A매치 데뷔 12번째 경기만에 차두리의 A매치 데뷔골이 나왔다. 차두리는 지난 2002년 4월20일 코스타리카와의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전반 24분만에 득점에 성공했다. 의도한 골은 아니었다. 안정환이 올린 공이 차두리의 몸에 맞고 그대로 골문으로 들어간 것. 하지만 차두리의 데뷔골인 것은 분명했다.

사실 차두리는 한국의 전설적인 선수인 차범근(현 SBS 해설위원) 위원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차두리' 이름 석자보다 '차범근의 아들'로 더 유명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중 차두리는 22002년 6월18일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에서 환상적인 오버헤드킥을 선보임으로써 축구팬들의 머릿속에 '차두리' 이름 세기게 된다. 당시 경기도 2대 1로 승리. 차두리는 한국이 월드컵 4강신화를 이룩하는데 단단히 한 몫하게 된다.

차두리는 축구인생에서 제2의 출발이라 할 수 있는 포지션 변경도 감행했다. 유럽에서 살아남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었다. 그는 기존 공격수에서 우측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2006년 마인츠로 이적할 때 마인츠 관계자는 "차두리를 오른쪽 풀백으로 기용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태극마크와도 인연을 맺고 끊기의 연속이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선 최종엔트리 승선에 실패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재기에 성공했다. '차미네이터'로 불리며 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2014년 브라질월드컵도 인연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함께 해설위원으로 변신했다.

이처럼 굴곡이 많았던 차두리다. 하지만 이번 대회 지난 13일 쿠웨이트전과 22일 우즈벡전에 출전해 두 번의 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 선수들 가운데 역대 아시안컵 최고령 출전자지만 차두리는 어느 선수들보다 빠르고, 단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 포털사이트에서는 차두리의 은퇴를 반대하는 서명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더이상 아버지의 그늘은 차두리에게 없다. 차두리는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마지막 경기를 준비한다.

/김근영 기자 kky8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