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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우체사(郵遞史)는 1883년 7월 미국에 갔던 보빙사절단에 의해 그 씨앗이 뿌려졌다. 일행이 인천을 출발해 일본 나가사키, 요코하마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것은 그해 9월2일. 거기서 시카고, 워싱턴을 지나 뉴욕에 이르는 신문물 기행(紀行)을 이어나갔다. 우체국, 전신국, 전깃불, 철도, 전차, 은행, 신문사, 방직공장 등 놀랍지 않은 것이 없었다. 돌아올 때 각종 신문물 200여개를 궤짝에 싣고 온 홍영식은 개화의 첫 단계로서 1884년 11월18일 우정총국을 열고, 인천-서울간의 우체 업무를 개시했다. 가슴 벅찬 출발이었다. ▶그러나 그 직후의 갑신정변과 일본의 우체권 피탈(被奪) 등 우체사는 파란의 연속이었다. <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이기열 지음)에는 그 같은 고난의 과정이 소상히 기록돼 있는데, 지난달 본보는 12월 중 시청우체국까지 폐국될 것이라는 또 다른 위기를 보도한 바 있다. ▶우편물 양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인천지역 우체국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2012년 5월 부평우체국 신설에 따른 업무 중복으로 '인천산곡우체국'이 문을 닫은 후, 금년 1월에는 24년 된 제물포우체국이, 7월에는 인하대 구내 우체국이 각각 폐지됐다는 것이다. ▶더불어 우체통도 퇴물이 돼 간다고 전했다. 보름간 우편물이 한 통 정도밖에 안 들어오면 철거 대상이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경우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우정사업본부의 설명이지만, 설상가상으로 서울시에선 우체통을 보행 방해 적폐물로 봐 철거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래저래 우체통이 수난을 겪고 있는 판에 일각에선 일본 우체통을 우리 것인 줄 잘못 아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모 지가 기획물 '신문은 선생님 키즈' 난의 삽화로 1887년 일본이 제정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우정 표지를 단 우체통을 버젓이 등장시켜 독자를 난감케 했다. ▶우리의 우정 표지는 무궁화 바탕에 한글 '우' 자에 날개를 단 형상인데, 옛 우체통이 없다는 핑계로 여러 박물관에서도 일본 우체통을 우리 것인 양 전시하고 있다. 우체통이 사라지는 것도 씁쓸한데, 왜색(倭色) 추억까지 강요당하는 셈이다.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