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논설실장
'메밀꽃 필 무렵'(1936)이란 단편소설이 없었다면 강원도 봉평은 작은 시골마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봉평에서 태어난 이효석(1907~1942)은 자신이 낳고 자란 고향의 정서를 단편소설에 녹여 넣음으로써 봉평을 '찾고 싶은 관광지'로 만들었다. 이효석 생가, 이효석 문화제, 이효석 기념관, 메밀전병, 메밀막국수 등등 봉평은 온통 '이효석 브랜드'로 가득하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이 태어난 충북 옥천 역시 시인의 생가와 문학관에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한다. 막상 가 보면 초라한 집 한 채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옥천을 가기 위해 사람들은 승용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그 곳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 풍광이 수려한 명소를 제쳐두고 '누옥'을 찾는 이유는 그 곳에 '이야기'가,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인천에선 지난해 '미추홀 2000년 인천정명 600년'을 기념해 '기억하고 싶은 인물 남기고 싶은 인물'을 선정해 책자로 만들었다. 비류에서부터 근대 인물까지 인천의 주요 인물을 집대성 했지만, 여말선초의 큰스님인 함허대사라든지, 광복 뒤 인천 최초 신문인 '대중일보'를 창간한 언론인 이종윤 선생과 같은 몇몇 주요 인물이 누락됐다. 함허대사는 서산대사의 몇 대조 윗 스승일만큼 큰 인물로 지금의 함허동천은 그의 법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언론인 이종윤은 인천의 대표적 언론인이자 조선 성종 때 대사헌을 지내고 말년에 인천 화도에 장전을 하사 받으며 인천에 정착한 '이칙'(1438~1496)이란 인물의 후손이다. 이종윤은 고성 이씨로 그의 가문은 오백년 넘게 대대로 인천에서 살아온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매우 중요한 집안이다.

어쨌거나 지난해 선정된 인물 가운데 세상 밖으로 나온 사람은 '백운 이규보'와 '소남 윤동규' 2인 뿐이다. 이규보는 규방다례보존회가 지난해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현시대 사람들과 본격적으로 조우했다. 규방다례보존회는 지난해 이규보의 생애와 학문을 연구하는 학술대회와 묘에 차를 올리는 헌다행사를 시작, 올해까지 두 차례 행사를 치렀으며 앞으로도 매년 이규보를 기릴 예정이다. 성호 이익의 수제자로 평생 실학을 연구한 윤동규는 지난 달 25일 인천에서 처음 '소남 윤동규의 학문과 인천'이란 실학문화 심포지움을 개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이 심포지움을 굳이 인천에서 개최한 것은 소남이 지금의 남동구 도림동에서 살며 실학을 공부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인물을 선정만 해 놓고 후속작업이 없다는 점이다. 많은 지자체가 인물을 '지역의 빛나는 문화' 혹은 '자랑하고 싶은 정체성'으로 브랜딩해 경제로 연결시키는 시대, 인천에선 인물을 선정해 놓고도 '인물브랜딩' 작업이 이어지지 않다보니 여전히 역사속 인물로만 뭍혀 있는 것이다. 이규보나 윤동규처럼 민간단체나 특정 기관이 움직이지 않는 한 인천의 인물들은 여전히 기록으로만 남겨질 뿐이다.
혹자는 선정된 인물들이 브랜딩이 쉽지 않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브랜딩을 하기 좋은 인물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굳이 이효석이나 정지용과 같은 '문인'들이어야 한다면 인천엔 희곡작가 함세덕을 꼽을 수 있으며, 동구 화평동 455번지에 생가터도 남아 있다. 전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문학관의 이름을 지역 문인으로 짓는 것은 '인물을 통한 브랜딩 전략'이다. 향후 인천의 인물을 더 정교히 발굴하고 인물들을 여러 형태로 브랜딩하는 작업은 '인천정체성 찾기'의 우선적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