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복 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
창조라는 단어만큼 불편하게 들리는 말이 없다. 꼭 '이어령비어령(耳於鈴鼻於鈴)' 같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만국공원 창조적 복원' 계획을 두고 인천의 식자층 간에 설전과 대립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명명의 주체와 반대의 주체가 헤게모니 싸움하듯 판세의 주도권을 쥐락펴락 했지만, 결론은 자유공원에 미니어처 양관(洋館)을 짓지 않는 것으로 가닥이 모아졌다. 인천을 사랑해서, 인천의 도시적 가치를 그냥 놔둘 수만은 없어서라는 두루뭉술한 여운만 남기고 흐지부지 촌극으로 끝나버린 사건이었다. 연구용역비와 인력 그리고 인천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의 엇갈린 의견이 냉소와 비관이라는 앙금으로 남은 채 말이다.

며칠 전, 신포동 문화의 거리 한복판에 이상한 조형물이 생겨났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 신탄시장(薪炭市場)과 야채시장, 닭전(廛) 등이 들어섰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축제 때마다 무대가 세워졌다 해체되기가 빈번했던 장소였는데, 그 장소에 버젓이 콘크리트를 기반으로 한 철 구조물의 하반신이 느닷없이 조성된 것이었다. 불현듯, 주도권 싸움에서 깃발을 움켜쥔 자가 '동네사람들이 나를 뽑아 줬으니, 동네를 맘대로 하겠다.'는 윤흥길 소설 '완장'의 임종술을 흉내 내는 듯한 이미지가 떠올려졌다. 주민들의 의사는 물론이고 상가 점주들도 공사 내용을 통보받은 바 없으며, 시멘트 수t을 도로 한 복판에 쏟아 부었지만, 시방서조차 게시하지 않은 전근대적이고 반민주적인 게릴라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밤중에 말이다. 적법한 방법과 주민의 동의가 있었더라면, 교통 혼잡을 이유로 삼지도 않을 것이며 안내판 설치도 가능했었을 것이다. 여하간 공사의 주체가 주민 알기를 보도블럭 사이에 낀 잡초쯤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창조적인 도시는 거주 시민의 창의력을 얼마나 끄집어내느냐, 더 많은 시민이 더 다양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마당과 네트워크가 형성되어야 한다.' 라고 <창조도시>의 저자 찰스 랜드리(Charles Landry)는 말하고 있다. 이미 인천시민 사회가 그러한 과정적 고충을 겪으며 우일신(又日新) 하는 마당에, 독박 쓰듯 느닷없이 뒤통수 얻어맞은 상황이 연출되고 만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부산 중구 광복동에서 치르는 크리스마스트리 축제에서 발상을 얻어 인천 중구 신포동에 트리를 설치하는 것이라는 풍문인데, 필자의 주관적 판단에서 보면, 남의 답을 보고 베끼는 것에 불과한 유치함 그 자체로 밖에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마당에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은,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 시는 인구 38만의 도시이지만 인구의 78%가 참여한 행정협정에서 공동으로 협의된 사항이 아니면 재정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구체적 선례가 참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공무원은 행정을 겸한 활동가로서 칭송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는 지역주민의 말이다.
신포동은 말마따나 전통을 만들어가고 우리 후손에게 긍정적 미래를 담보해줘야 하는 책임이 막중한 지역이다. 근현대를 아울러 창조적이고 가치 있는 미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민의,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협치(協治)와 네트워킹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창의적인 퓨처마킹(Future marking)이 필요한 것이다. 짝퉁은 창조적인 도시의 쓰레기이고 인천사랑의 불장난임을 똑똑히 간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