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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11월의 파리는 제법 쌀쌀한 날씨였다. 프랑스의 국민배우 장가방의 고별식이 개선문 광장에서 거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필자는 샹젤리제 쪽으로 나갔다. 고별식 행사가 끝나고 운구 행렬이 샹젤리제 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는데 엄청난 인파에 놀랐다. 미국 대통령이 프랑스에 와서 샹젤리제 대로를 모터케이드로 지나가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파리 시민들이 수만 명 영화배우의 서거를 애도하면서 운구차를 따르고 있었다. ▶장가방은 영화에 데뷔하면서 프랑스의 노동자계급을 상징하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 자신의 출신배경과 함께 항상 헝겊 모자를 눌러쓴 근로자의 모습으로 서민들의 스타가 되었다. 그의 매력은 잘생긴 미남이나 스마트한 것보다는 뚝배기 같은 코, 무표정하고 웃음없는 얼굴 같은 개성에서 풍긴다. ▶『호리·벨즈엘』이란 연극으로 데뷔한 장·가방은 『기회는 누구에게나』라는 영화를 시작으로 『망향』『위대한 환상』 등으로 스타가 되었다. 2차대전 때는 잠시 해군에 입대했다가 미국으로 피신한 그는 할리우드에서 『밤안개의 항구』『도망자』 등에 출연하고 프랑스에 돌아왔으나 인기는 과거 같지 못했다. 50년대에 들어와 『현금에 손대지 마라』『프렌치 캉캉』 등으로 다시 스타가 된 그는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도 영화에 출연하는 프랑스의 국민배우였다. ▶일본의 영화배우이자 국민배우로 불리는 다카쿠라·켄(高倉健)이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에는 시골철도역을 끝까지 지키며 따듯한 마음을 보여주었던 『철도원』으로 알려진 다카쿠라의 서거 소식을 아사히(朝日)신문에서는 예외적으로 호외를 발행하며 애도했다. 그의 친구이자 일본의 유명 야구선수 출신인 나가시마 시게오(長嶋茂雄)씨는 "남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그로부터 배웠다"고 했다. ▶일본 영화배우의 서거에 중국외교부 대변인은 "다카쿠라 선생은 중국 인민에게 널리 알려진 예술가였고 중·일 양국의 문화교류에 중요하고 적극적인 공헌을 했다"면서 애도를 표했다. 중국정부가 이례적으로 일본 영화배우의 서거에 애도를 표한 것은 중국과 일본 간에 벌어지고 있는 대결국면에서 일본 국민들에게 던지는 차원 높은 외교적 발언으로 느껴진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