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동 화재 학생희생자 15주기 추모제
▲ 지난 29~30일 이틀간 인천시 중구 인천학생문화회관에서 열린 '인천학생화재참사 제 15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유가족이 흐느끼며 희생자 추모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황기선 기자 juanito@incheonilbo.com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고통입니다. 경주 리조트 붕괴, 세월호 참사를 보며 올해 유독 가슴의 멍이 짙었습니다."

오덕수(남구 용현동·59)씨는 지난 1999년 인현동 상가 화재로 17살이던 고등학생 아들을 잃었다. 지금쯤이면 30대 초반이 됐을 나이다.

지난 29일 오후 9시 '인현동 화재 학생 희생자 추모제'에 온 그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홍예문문화연구소가 인천시 중구 인현동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주차장에서 연 이날 추모제에는 시민 20여명이 모였다.

1999년 10월30일 상가 화재로 학생 57명이 목숨을 잃은 지 15년이 흐른 날이었다.

시민 스스로 준비한 추모제는 지난 2000년이 마지막이었다.

유가족 5명도 추모제를 찾았다.

오씨는 "매년 10월30일마다 유가족이 모여 제를 올린다. 오늘도 제를 준비하러 왔다가 우연히 시민 추모제가 열리는 것을 보고 가까이 사는 유가족과 함께 왔다"고 했다.

유족들은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만난다. 15명 정도가 모여 이런저런 얘길 나누며 아픔을 잊는다.

바이올린과 첼로 추모 연주가 이어지자 선율 사이로 흐느낌이 섞여 나왔다.

"추모제를 열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는 가족들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튿날인 30일 오전 11시. 같은 장소에서 유가족들이 제를 올렸다.

제삿상 양옆으로는 '엄마''아빠' 이름의 화환이 놓였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불리는 가운데 묵념이 이어졌다.

이름을 외치는 이도, 고개를 숙인 이도 함께 눈물을 훔쳤다.

이재원 유족회장은 "당시 지방에 내려가 있었다. 인천에 와서야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설마 했는데 현실이 되고 말았다"며 "병원에 안치된 시신을 보고 차마 아내에게 알릴 수도 없었다. 살아 있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지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유족들은 "10월만 되면 … "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언제쯤 안전한 나라가 될지 모르겠다"며 한숨도 쉬었다.

지난 몇 개월간 학생들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미어져서다.

추모제를 마친 유가족 30여명은 팔미도 해상으로 향했다. 당시 희생된 학생들의 유골이 뿌려진 곳이다.

이들이 떠난 추모석에는 '너희 안부 물어볼 밖에 없는 못난 아비, 못난 어미를 용서해다오. 지키지 못한 세상의 허황한 꿈을 너희에게 용서받지 않고는 편히 잠들 자 없는 이 세상을 모두 모두 용서해다오'라는 헌시 구절이 새겨 있었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