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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미국의 백악관 출입기자를 40여 년간 역임하면서 8명의 대통령을 취재했던 여기자가 정년퇴임한 것이 화제가 됐다. 그러나 미국에서뿐 아니라 프랑스에도 대통령 집무실 엘리제를 40년 이상 취재해온 노련한 기자들이 있었다. 필자가 파리에서 언론사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 엘리제궁은 중요한 취재대상이 아니었다. 한·불 관계가 그다지 밀접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뉴스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시 간혹 동행취재를 위해서는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에 가입하고 있어야 했다. 프랑스 대통령의 인도 방문과 시리아 방문 그리고 프랑스령 서인도제도 구아델로프에서 열렸던 당시 미국의 지미·카터 대통령과의 회담을 동행 취재했을 때 보고 느낀 점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외국 방문 때와는 달리 현안문제가 뚜렷했고 기자단도 100여명에 가까웠다.

▶원로기자들은 프랑스 정상외교의 역사와 방식을 꿰뚫고 현안문제의 방향을 예견하는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한 분야의 전문성을 위해서는 본인의 부단한 노력이 앞서야 되겠지만 같은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일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국제 스포츠계의 대표적인 원로는 영국의 데이비드·밀러(79) 기자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88서울올림픽대회 때였다. 필자는 당시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대외담당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 조선일보사의 88올림픽 취재본부장으로 있었다. 100m 우승자 벤·존슨이 약물 복용으로 금메달이 취소되는 것을 특종 뉴스로 보도했던 필자를 찾아온 밀러 씨와는 그 후 25년 이상을 각종 국제대회에서 만나 교우하는 사이가 되었다.

▶지난 50년 이상 영국의 더·타임스와 데일리·텔레그래프 같은 유수한 매체에서 근무한 밀러 씨는 올림픽 23회, 월드컵 14회, 아시안게임도 6회나 현장 취재한 스포츠 기자의 살아있는 전설적 존재다. IOC(국제올림픽 위원회)는 그를 공식 올림픽 대회 기록인으로 임명했고 올림픽의 공식역사(1894~2012)를 펴내기도 했다. 노구를 마다하고 인천 아시안게임을 찾은 밀러 씨를 MPC(메인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것은 큰 기쁨이었지만 까다로운 그가 인천 AG를 호평한 것은 또 다른 보람이었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