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문학 강좌 중 한 꼭지로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인천에서 문학 이야기를 하게 될 때, 필자는 인천 출생 작가들의 작품, 인천지역을 배경으로 다룬 작가의 작품을 소재로 이야기를 준비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작가를 알리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훌륭한 문학적 공간임을, 그리해 문학이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알리려는 목적이 컸다. 가을저녁에 어울리는 시를 준비했고, 이 시간을 통해 그동안 잊고 있었던 문학적 감성을 깨우고 다시금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기를 바랐다.

인문학의 위기가 거론된 지 오래였다. 그 어느 나라보다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앞만 보고 달려가야 했다. 빛나는 청춘을 오로지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한 문제 더 맞추기 위해 문제집을 풀기에 급급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학점을 따고 스펙을 쌓기에 바빴다. 해외 봉사도 진심이 아니라 이력서에 들어갈 한 줄이 필요했기 때문에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는 대학 지원 기준을 취업률로 평가했다. 대학에서는 한가하게 인문학 관련 강의를 개설할 여유가 없었다. 취업률이 낮은 비인기학과는 통폐합되거나 슬그머니 다른 이름으로 바꿔달았다. 학과와 교수는 좋은 강의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고민해야 했다. 비정규직, 인턴은 어떻게든 정규직이 되기 위해, 정규직은 한 단계 더 높은 자리를 위해 매일 피 흘려야 했다. 인문학이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고민할 시간도, 물음을 내 안에 던져볼 여유도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바라볼 시간이 없었다. 이 사회는 극단적 이기주의에 빠져 소위 "나만 아니면 돼"가 돼버렸고, 고통을 나누기 보다는 그 고통이 내 일상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까봐 전전긍긍했다. 사회는 날로 흉포해져 존속살인, 가정폭력이 만연해졌다. 이웃의 소외나 고통에 무덤덤해졌고, 지역에 대한 무관심이 커졌으며, 생태나 환경은 자연 중심이 아닌 인간중심으로 돌아갔다. 나라 전체가 병들어가고 있는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이 병을 회복할 수 있는 약은 인문학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와 내 주변 대한 진지한 성찰 속에서 해답은 나올 수 있다. 종교와 철학, 생태, 문학, 미술, 지역에 대한 관심을 통해 함께 나눌 수 있는 일을 찾고 사회공동체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일고 있는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 열풍은 당연한 현상임에도 고맙기까지 하다.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은 나비가 되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치는 애벌레를 통해 진정한 자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이야기로 유명한 그림동화로 결국 나비가 되는 애벌레는 누군가를 밟고 더 높은 곳을 올라간 애벌레가 아니라 자신을 고치 속에 가두고 오랜 시간을 보낸 애벌레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사회가 하루빨리 경쟁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학이 학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학문연구의 장이 되어야 한다. 오로지 자본에 귀속돼 수입과 보유 아파트 평수, 자동차 등으로 중산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페어플레이를 하고 악기를 다루고 자신의 주장에 신념을 갖고 불평등 불의에 의연히 나서야 중산층이라는 다른 나라의 기준에 부끄러워져야 한다. 자본을 버리면 길이 보인다. 진정한 인격체로의 삶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통해 사회가 변할 수 있으며 그 길에 인문학이 한 몫을 담당하리라 생각한다.

/양진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