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현의 사진, 시간을 깨우다 - 9. 한국여자배구의 강자 동일방직, 그리고 흥국생명
▲ 천하 여장군들의 금의환향. 1966년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동일방직여자배구팀이 시청을 방문해 윤갑로 인천시장(가운데)과 포즈를 취했다. 선수 대부분이 국가대표로 선발될 만큼 동일방직배구팀은 1960년대 내내 최강팀으로 군림했다.
방직업 불황속 해체·재창단 … 2009년 다시 연고지로



프로배구 2014~2015 V리그가 지난 18일 시작해 6개월간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인천 연고 팀은 남자부는 대한항공 점보스팀, 여자부는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팀이다. 핑크스파이더스(pink spiders)의 전신은 동일방직여자배구팀이다. 동구 만석동에 자리 잡은 동일방직(전 동양방적)은 1934년에 문을 열었다. 설립 당시 종업원 3000명에 직조기 1292대로 조업을 시작해 일본인들이 '동양 최대'라고 자랑할 만큼 큰 규모였다.

1960년대 우리나라의 면방직업계는 호황을 누렸다. 동일방직은 1960년대 초 여자배구팀을 창단했고 뒤를 이어 대전방직, 경성방직, 선경직물 등 섬유 관련 업체들이 배구팀을 만들었다. 이들은 국세청, 산업은행, 제일은행, 석유공사 등과 함께 한국 여자실업배구의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중 동일방직 배구팀은 강팀으로 분류되었다. 박계조배쟁탈남녀배구대회, 전국춘계실업배구연맹전 등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며 항상 톱 랭킹에 속했다. 올림픽대회, 아시안게임 대비 국가대표팀을 구성할 때마다 대한배구협회 최우수선수로 뽑힌 서희숙 등 주전 대부분이 상비군으로 선발될 정도로 1960년대 내내 상위권에 속했다.

그들이 훈련하는 체육관 겸 강당은 공장 안에 있었다. 선수들의 고함이 하루 종일 직조기 소리에 섞여 만석동 공장 담 너머로 흘러 나왔다. 인하대와 대한항공에서 주전으로 뛴 미남 선수 최천식(현 인하대 감독)의 어머니 박춘강 씨도 동일방직에서 오른쪽 공격수로 활약했다. 사진은 1966년 대회에서 우승한 동일방직 여자배구팀이 인천시청을 방문해 시장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이다. 당시 이미 6인제 배구로 바뀐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주전 6명만이 앵글에 들어 왔다.

영원히 코트를 누빌 것만 같았던 동일방직 배구팀은 면방직 업계의 불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1971년 8월 전격 해체된다. 당시 국내 여자실업팀 중 가장 오래된 배구팀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다행히 태광산업이 인수해서 재창단하기로 결정해 선수들은 유니폼만 갈아입게 되었다. 창단 이듬해 1972년 실업무대에 본격 나서며 3월 부산에서 열린 실업연맹전에서 5전 전승, 창단 7개월 만에 우승을 일궈내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1975년 국가대표 이순복을 주축으로 전국대회 3관왕의 영예를 누리며 8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다. 동일방직 출신의 이순복은 1972년 뮌헨올림픽 주전과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동메달 획득의 주역으로 한국배구사의 명 플레이어로 꼽힌다.

태광산업은 방계회사인 동양합섬을 통합했는데 이 팀은 남자배구단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로써 당시 국내에서 유일하게 같은 종목 남녀 스포츠팀을 모두 보유한 회사가 되었다. 1991년 태광 배구팀은 태광그룹 자회사인 흥국생명에 속하게 된다. 흥국생명여자배구팀은 2005년 11월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로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프로 전환을 선언했다. 2005~2006 여자프로원년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을 동시에 제패,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V-리그 챔프전에서 연이어 우승을 차지하며 최초로 V3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2008년까지 천안시가 연고지였던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는 2009년 인천시와 정식 연고 계약을 체결했다. 동일방직 여자배구팀이 해체된 지 38년 만에 다시 고향 코트를 밟은 것이다. 그동안 핑크스파이더스는 도원실내체육관을 홈구장으로 사용하였다. 올 시즌부터는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때 배드민턴 경기를 치렀던 계양구 서운동의 계양체육관을 새로운 '거미집'으로 만들고 다시한번 인천여자배구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유동현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