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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證)'이 위력을 발휘하던 시대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도항증(渡航證)을 얻어야 적도에 가 볼 수가 있었고, 6·25전쟁 때는 도강증이 없어 적 치하에서 몇달간 적기가(赤旗歌)를 배워야 했던 세대도 있었다. 전후에도 갖가지 '증'이 남발됐는데, 위력은 계속됐다. ▶'증' 가운데, 꽤 웃기는 '증'도 있었다. '문화인증'이란 게 그것인데, 그를 내세우며 '문화인' 연하던 소위 '문화인'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 외 국민은 뭐란 것인지 생각할수록 고약한 '증'이었다. '통감증(通鑑證)'과 교사의 '교외 지도증' 처럼 극장을 무상출입할 수 있는 '증'도 있었다. ▶'증'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사회적 '권력증(權力證)'으로, 일단 소지하면 삼엄한 검열을 피하거나, 공연장ㆍ경기장을 남보는 앞에서 거저 들어간다는 우월감까지 충족시켜 준다는 점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를 통해 자기 현시욕을 충족했던 게 세속의 풍정이었다.▶최근 일본에서 그 '증' 때문에 아사히신문(朝日新聞) 기자 등이 전국적인 망신을 당한 일이 있다. 제96회 갑자원대회에서 주최측인 아사히신문 요코하마 총국 기자와 고교야구연맹 관계자가 취재용 기자증과 주최측 ID카드(신분증)를 빌려주거나 부정하게 사용하다가 그 사실이 들통났던 것. ▶당사자들은 기자증과 ID카드 반납과 함께 전말서를 제출했고, 아사히신문은 "기자 교육을 철저히 하겠다", 야구연맹 측은 "ID카드의 중요성을 주지시키겠다"며 공개사과를 했다. 그러나 요미우리는 "기자와 지인의 성별을 밝히지 않은 것은 추한 일"이라며 열을 올렸다. ▶인천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시의회 의장 아들이 AD카드(출입증)를 부정 사용한 정황이 적발돼 불구속 입건됐다고 한다. 노 의장 운전기사의 AD카드를 가지고 아들이 야구 결승전을 귀빈석인 스카이박스에 들어가 보려고 했다는 혐의다. ▶지난달 21일에도 대한유도협회 회장이 AD카드가 없는 지인을 도원체육관에 출입시키려다 제지당하자 조직위 관계자와 출동한 경찰에게 욕설을 해 논란을 낳았다고 전한다. '증(證)'이 형태만 바뀌었을 뿐, 그를 둘러싼 세태는 변한 게 없어 보인다.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