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이 가천대길병원 간호과장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성공적인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건강보험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는 물론, 이제 막 도입을 시도하는 나라들 역시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를 성공적인 모델로 인식하고 있다. 이렇듯 우수한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낮은 보장성과 보험료 부과 체계 문제만큼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필자는 지난 2012년 3월부터 국민건강보험 인천남동지사 장기요양등급판정위원을 맡고 있는 터라 누구보다도 건강보험제도 개편에 관심을 갖고 있다. 요즘 신문과 방송에서 보험료 부과체계개선이 필요하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있으나 이에 대해 정부는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역보험료 부과체계는 1988년 농어촌지역 의료보험과 함께 시작되었다. 당시 자영업자의 소득파악률은 불과 10%도 안돼 부득이 소득, 재산, 자가용, 성·연령 등을 감안한 복잡한 부과체계가 탄생했다.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이 있기 때문에 보험료 부과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지역가입자는 낮은 소득파악률로 인하여 재산(전월세 포함), 자동차와 평가소득(성·연령, 재산, 자동차) 등을 고려하여 보험료를 부과할 수밖에 없었다.

부과 기준이 복잡해 상담하는 건강보험 직원들조차 설명하는데 애를 먹는다고 한다. 가족구성원 수가 늘어나거나 나이만 들어도 보험료가 변동 되고 수시로 재산 과표 등이 바뀌기 때문에 보험료 관련 민원이 매일 끊이지않는다. 춘천지사의 경우, 지난 해 방문, 팩스, 전화를 통한 민원이 총 30만 건에 달했는데, 이 중에 보험료 관련 민원이 80%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현재 지역 가입자의 보험료 산정 기준에 소득과 무관한 재산과 자동차, 연령 등이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61%이기 때문이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소득이 없는데, 무슨 수로 보험료를 내라는 것인지 황당무계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지역 건강보험료는 또 다른 형태의 세금이라는 불만의 소리가 높다. 재산 비중 보험료가 현실에 맞지 않게 책정되면서 퇴직이나 실직으로 직장 가입자에서 지역 가입자로 전환되었을 시 보험료가 크게 오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내년부터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은퇴가 본격화 되면, 현행 부과체계로 인하여 엄청난 민원과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 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제도를 위한 필수적인 과제이다.

다행히도 이러한 부과체계 문제점 개선을 위해 보험자인 건강보험공단이 스스로 개선안을 만들고 정부와 국회에 건의하였으며, 정부 또한 공단의 건의를 받아들여 부과체계개선기획단을 만드는 등,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을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본격적인 논의에 돌입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사안의 중요성과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이 안건은 정체된 상태로 1년의 시간을 넘겼다. 언제까지 책상 위에서 논의만 할 것인가? 가시적인 문제 해결과 성과를 위해 하루 빨리 입법화 추진이 필요하다.

기획단에서 1년 넘게 논의 중인 것은 건강보험료 부과기준 적용을 소득 단일 기준으로 할지, 소득을 기준으로 기본 보험료를 둘지, 소득과 재산을 동시에 고려할지 등에 대한 문제이다. 국민건강보험으로 인해 경제활동에 피해를 입는 국민의 절박함을 고려해 이제는 논의를 마무리 짓고 하루 빨리 부과체계개선안을 적용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평등하면서도 각각의 상황과 처지에 알맞게 적용되는 합리적인 부과기준 개선안을 마련하는 것은 정부의 과제이기도 하면서, 또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여하와 관련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