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종 인하대교수
논문이란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논문이 대량으로 양산되는 상황에서 그런 기대는 안 하는 것이 좋다. 논문은 그저 평범하거나 형식만을 갖춘 것들이 많아, 그런 논문들을 가지고 인사청문회의 검증재료로 이용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논문이란 국회의원들이 출판기념회를 위해 내는 책들과 비슷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학위논문이 심사를 통과해 나온 것인데 표절이니 뭐니 하며 심사자는 빼고 저자만을 추궁하는 것도 맞지 않는 일이다.
많은 학술지의 논문들은 연구가 직업인 교수들이 국가나 대학의 연구비를 받고 수행한 것들이지만, 혹 검증이라도 한다면 평가받을 만한 논문 찾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연구자로서의 업적을 평가받아 장관후보자가 된 교수의 논문정도는 훌륭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런 교수들의 논문조차도 매번 표절, 중복게재, 연구비 부당수령 등에 걸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논문의 질까지는 평가하지 않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논문은 창의적 결과물인 만큼 시도 때도 없이 만들어질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소수의 권위 있는 학술지에 실린 논문만이 소개되고 칭찬 받는 것이다. 그저 시간만 들이면 할 수 있는 것들은 연구라 할 수 없다. 그런대 그런 것들이 모두 논문으로 양산되어 교수들의 업적으로 되고 있다. 당연히 교수들은 좋은 논문을 써야 하지만, 논문을 양으로 평가받는 현실에서는 질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쓰레기 같은 서적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논문 역시 마찬가지이다. 쓰레기처럼 묻혀버릴 수백편의 논문보다는 영원히 남을 단 한편의 논문을 쓰는 것이 가치 있는 일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논문을 가장 많이 쓴 사람이 가장 훌륭한 학자라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가치 없는 논문은 안 내는 것이 학자의 양심인데, 이도 무너진 지 오래이다.
모든 연구자에게 논문을 요구하니 학회가 난립하게 되고 결국 많은 학회지의 논문모집과 심사 등이 어려움을 겪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수한 논문만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당연히 국내공인학술지의 평가방법을 논문의 질로만 한정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술지 평가의 초점을 논문심사 제도에 맞추어야 할 것이다. 옥석을 가려낼 만한 권위자의 참여 없이 제대로 된 논문심사를 담보할 수는 결코 없는 것이다. 심사제도의 투명성, 공정성 등도 훌륭한 심사자가 있고 나서의 문제이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학문의 발전을 꾀하려면 논문은 논문대로 질을 높여야 하지만, 전공분야에 따른 다양한 연구를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학문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면 학문에 따라 요구하는 결과 또한 다양해야 한다. 분야마다 평가해야할 항목이 다른데, 논문 하나만을 최고의 가치인양 몰아가서는 학문의 발전은 오히려 뒷걸음질 치게 된다. 예체능의 실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연구에도 논문보다 더 중요한 결과물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분야에 논문만을 요구하게 되면, 논문은 생존을 위한 형식적 수단으로 전락하여, 결국 나와서는 안 될 논문들이 양산되게 된다. 논문 외에 저서, 번역, 실기 등이 업적으로 인정받아야 만이 각 전문분야가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연구는 전공분야에 따라 평가해야할 항목을 정확히 파악하고 지원 대상도 그에 따라 선정해야 한다. 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연구계획서로 연구비지원을 결정하는 평가제도 또한 개선되어야 한다. 연구가 계획서처럼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가 계획서처럼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세상에 풀리지 않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연구를 결과물로 평가하지 않는 제도 하에서는 연구비를 받고난 후 결과에 상관없이 논문을 써내야 하니 억지 논문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세금낭비가 아닌 학문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 관리 제도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