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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3월, 미국의 W.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자유 작전'이라고 명명된 바그다드 공습을 개시하면서, 대량살상무기 비확산과 민주주의 회복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9·11 이후 반테러전쟁에 나선 W.부시 행정부가 아프간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킨데 이어 이라크를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하면서, 미국은 이 전쟁이 이라크 민중의 해방을 위한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은 중동의 석유자원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한 전쟁이거나 혹은 중동지역에서 군사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데 더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고 나섰다. W.부시 행정부가 장담했던 대량살상무기(WMD)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은 비확산 원칙을 반미적인 이라크에 적용하면서, 친미적인 이스라엘에는 적용하지 않는 이중잣대만을 보여줬다.

그보다 10여년 앞선 1991년 1월, 아버지 부시 행정부는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저지하기 위해 '사막의 폭풍'는 이름의 군사작전을 전개하면서, 이 지역적인 분쟁에 개입했다. 냉전기 동안 준비는 되었지만 사용되지 못했던 첨단의 무기들이 마치 제품광고하듯 이 곳에서 시연됐다. 컴퓨터 게임하듯 군사작전이 CNN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면서 전쟁의 이유나 참혹함은 쉽게 뒷전으로 밀려났고, 세계의 이목은 미군의 첨단무기와 작전능력에만 집중됐다.

이 전쟁에서도 미국은, 자국의 이해가 걸린 원유생산국 쿠웨이트에 대한 이라크의 침공에는 즉각 개입하면서 보스니아가 무려 1395일 동안이나 봉쇄된 채 세르비아에 포위공격을 당하는 상황은 짐짓 못본체 하는 위선을 보여줬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대표적인 분쟁 혹은 전쟁에서, '한국전'과 '베트남전'이 냉전체제의 시작과 공고화를 이루는 계기였다고 한다면, '걸프전'과 '이라크전'은 탈냉전체제의 시작과 반테러체제의 공고화를 이루는 계기였다.

냉전체제에서의 '베트남전'과 반테러체제에서의 '이라크전'은 그러나 공교롭게도 미국의 오만과 편견에 기인하는 오판의 전례를 보여준다. 민족해방전쟁의 성격이 강했던 베트남전을 단순한 냉전의 연장으로 보고 섣부르게 대응하려했던 오만이나, 무슬림 내부의 뿌리깊은 종파적 갈등을 간단하게 테러리즘의 프레임 안에 가두려했던 편견이 그것이다.

이념과 체제의 갈등을 특징으로 하는 동서 양극체제에서, 그리고 그것이 경제와 문명 간 갈등으로 대체된 지금의 세계질서에서, 미국이 지켜야 할 이익의 양상이 여실히 달라질 수 있다는 상황을 충분히 감안한다면, 걸프전과 이라크전에서 보여줬던 위선과 이중잣대, 그리고 베트남전과 이라크전에 나타났던 오만과 편견에 대해서도 굳이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기는 하지만, 이 전쟁들을 '어리석은 전쟁'이라고 규정했던 오바마 행정부에서조차 그 어리석은 전철이 비슷하게 되풀이되는 양상은, 실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