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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좀 넘은 이야기다. 본보가 석간이었을 때였다. 오전 중에 4개 면을 편집하느라 경황이 없는데, 웬 초로의 손님이 문화부를 찾아왔다. 그는 불쑥 사진 한 장을 내밀며, 인천시문화재위원회에 가서 물었더니 별 거 아니라고 해 재확인차 방문했다고 했다. ▶사진을 보니 좀처럼 보기 어려운 조선시대의 '전신 좌상'이었다. 범상치 않음을 느껴 부랴부랴 당시 문예진흥원에 근무하고 있던 한양대 김용범 교수에게 국가문화재위원회 초상화 담당이 누구인지 필자에게 소개해 줄 것과 댁의 위치를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곧 연락을 받고, 회사 지프에 올랐다. ▶서울대 교수이자 문화재위원인 안휘준 교수 댁에 도착하니 벌써 어두컴컴해졌다. 자초지종을 말씀 드린 후 대청마루에 청사 김재로의 초상화를 주욱 폈더니, 안 위원은 "국보급"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용화사 한종유와 변상벽이 합사한 걸작이라는 평가는 듣기에도 흥분되는 것이었다. ▶다음날, 본보 1면의 톱기사 제목은 "인천시문화재위원회, 굴러온 국보급 유물도 몰라봐"였다. 전신 좌상도 컬러로 크게 실었다. 몇 개월 후, 문제의 초상화가 시 문화재로 지정됐지만, TV '진품명품'에 출품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현재는 어처구니없게도 호암박물관에 걸려 있다.▶인천시문화재위원회의 누군가가 저지른 해프닝의 하나였는데, 시 문화재가 사설 박물관에 걸리게 된 전무후무한 사건에 대한 책임은 끝내 아무도 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그보다 더 기가 찬 일이 타지 문화재위원들에 의해 벌여져 뜻있는 이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인천시 중구청이 벌이고 있는 '대불호텔 복원 사업'에 끼어들어 "복원이 가능하다"는 의견서를 위원으로서 써 준 것이다. 최초가 아닌 호텔을 '최초'라고 우기는데다가, 사진엽서 몇 장과 눈대중으로 그린 평면도 서너 장을 근거로 복원할 수 있다니 그게 다 무슨 헛소린인가 싶다. ▶복원 찬성파들은 그들이 누구이든 지역문화를 천박한 수준으로 몰아가는 훼방꾼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인천시문화재위원들 역시 이 사안을 신중하게 처리해 주기 바란다. 섣부른 판단으로 역사 날조나 상업적 왜곡에 동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