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필자가 외국에 있을 때, 우리나라 돈으로 약 1000만원의 투자를 받고 단편 영화 한 편을 제작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기존에 우리말로 썼던 시나리오를 영어로 번역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쉽게 생각했던 번역 작업은 '문화코드' 라는 벽 앞에서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단순히 소품을 된장찌개나 한복에서 햄버거나 양복으로 바꾸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언어의 변환만으로는 가져 올 수 없는 무엇인가를 간과 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문화코드' 이었다. 문화코드(Culture cord)란 특정한 공간속에서 어떤 개인이나 사회집단이 오랜 시간동안 경험하고 향유한 그들만의 고유하고 정형화된 문화적 색체를 말한다. 여러 해 동안 그 곳에서 살았었기에 그들의 문화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나리오를 번역하면서 그들이 느끼는 그들의 문화와 내가 생각하는 그들의 문화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근에는 이러한 문화들 간 차이의 간극을 최소화하여 다른 나라의 문화 중 하나인 영화를 리메이크 하는 경우들이 있다. 물론 자국 내의 소재 고갈로 인해 다른 나라 영화 시장에 눈을 돌리는 것도 있지만 시나리오 창작에 비해 적은 비용이 드는 것도 리메이크 시장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2006년 영화 <시월애>(2000)를 시작으로 한국영화는 <거울속으로>(2003), <장화,홍련>(2003), <엽기적인 그녀>(2001), <중독>(2002) 그리고 2013년 <올드보이>(2003)까지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되었다. 거대 자본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과 배우들이 투입 되어 할리우드식으로 재창조 된 영화들은 기대감을 갖게 하기엔 충분했지만 흥행성적은 그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이것은 아마도 근본적으로 다른 두 나라의 문화코드를 극복하지 못한 결과라고 분석 할 수 있다. 미국문화에 내재 되어있는 문화적 코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자유, 평등, 관용, 개척정신, 크고 새로운 것을 선호 등이 떠오른다. 그래서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콘텐츠나 아기자기하고 진부한 콘텐츠를 리메이크 한다면 아마도 미국 내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다.
2013년 11월 미국판 <올드 보이>(2013)가 개봉 되었다.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2003)을 리메이크한 영화이다. 한국에서 제작 된 영화 <올드 보이>는 전국 관객 수 328만 명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미국판 <올드 보이>는 북미에서 저조한 흥행성적을 거두었다. 필자는 미국판 <올드보이>의 흥행 부진이 아마도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코드 대립에서 기인했다고 분석한다. 원작 영화 <올드보이>의 전체적인 컨셉은 한 남자의 실수에 대한 복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전부터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결국 그 목표를 성취한다는 영웅이야기를 좋아했던 미국 관객들에게는 단 한 번의 말실수로 15년간 감금, 폭행당하는 컨셉 자체에 일단 거부감을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와는 반대로, 홍콩 영화 무간도(2002)는 2006년로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되어 북미지역에서 약 1억 3천만 달러의 흥행을 거두었다. 이 리메이크작의 흥행 요인으로 전문가들은 홍콩의 느와르를 미국식 마피아로 절묘하게 현지화 시켰기 때문에 흥행이 가능했다고 분석한다. 한국영화의 할리우드 리메이크는 계속 될 것이고 다른 나라의 영화나 드라마 또한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리메이크 될 것이다. 위 두 리메이크 영화들에서 보여 주듯이 리메이크 영화의 흥행 기준은 수출 대상국의 문화코드와 얼마만큼의 공유점을 가지고 있느냐와 수출국 문화의 특수성을 수출 대상국의 정서에 맞게 현지화 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