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정체성 찾기] 이영태의 한시로 읽는 인천 옛모습
4)인천팔경과 팔경시(八景詩) - '강화십경'의 적석낙조·성단청조
▲ 참성단<인천광역시사, 2002>
낙조(落照)는 '지는 햇빛'이다. 단순히 해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그것과 동시에 일어나는 여러 현상을 감안해야 낙조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서쪽으로 기우는 해는 주변의 색을 붉게 물들인다. 서쪽의 끄트머리가 바다라면 해의 침몰 상황은 더욱 복잡한 색깔을 연출하게 된다. 불을 의미하는 태양이 물의 성질인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만큼 낙조의 광경은 변화무쌍할 수밖에 없다. 바다의 사이사이에 아트막한 섬들이 자리 잡고 있을 때는 변화의 폭이 더욱 크다.

<강화십경>에서 적석낙조(積石落照)와 성단청조(星壇淸眺)가 그것이다.

赤蓮寺在碧山南
적련사는 고려산의 남쪽에 있는데
積石奇形手欲探
돌 쌓은 거 기이하여 만지고 싶네
夕照倘沈西海否
저녁 해는 서쪽 바다로 잠기는 게 아닐지
先將此理問瞿曇
이 이치를 석가모니에게 물어볼까나

김로진이 '적석사에서 바라보는 낙조(積石落照)'를 선정했고, 이에 대해 고재형이 시를 지었다.

<적석사 사적비>에 따르면 장수왕 4년 인도에서 돌아온 승려 천축이 고려산에 올라 오색 연꽃을 공중에 날려 그 연꽃이 떨어진 곳마다 사찰을 지었다고 한다. 연꽃 색깔에 따라 황련사, 흑련사, 청련사, 적련사, 백련사가 그것으로 적련사는 후에 적석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시를 통해 적석사의 위치와 특징을 엿볼 수 있다. '고려산의 남쪽' '저녁 해' '석가모니'라는 어휘는 적석사의 위치가 낙조를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란 점을 가리킨다.

섬들 사이의 바다로 떨어지는 해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신비롭고 경이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둥근 해는 단순히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해의 주변에 고리띠가 형성돼 있는데 그것은 붉은색의 농담(濃淡)에 따라 엷거나 두껍게 바뀌었다. 마침 구름 무리가 그것을 가리고 있다면 그 사이를 삐져나온 붉은 빛이야 말로 신비스러움 그 자체에 해당한다. 그래서 석가모니에게 물어본다는 것이다.

<심도지>에 따르면, 적석사에는 낙조 이외에도 영험한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장차 좋은 일이 일어날 때는 서기가 충만하고 장차 재변이 일어날 때는 우물이 마른다"는 기록이 있다.

星壇淸眺遠無迷
참성단의 조망은 맑아 먼 곳도 흐릿하지 않아
東峽南湖又海西
동쪽의 산, 남쪽의 호수, 바다는 서쪽에 있네
五百里如雙眼入
오백 리 광경이 두 눈에 들어온 듯하고
冥鴻歸處影高低
아득히 기러기 돌아가는 곳 그림자는 오르락내리락

<강화십경>의 열 번째 성단청조(星壇淸眺)이다. 단군이 쌓았다는 참성단(塹城壇) 혹은 참성단(參星壇)이라 불리는 그곳에서는 주변을 선명하게 조망할 수 있다. 시에 나타난 대로 동쪽, 남쪽, 서쪽 오백 리가 두 눈에 들어온 듯하다.

수평적 시선에 의해 포착된 대상들은 정지화면으로 보일 정도로 맑았지만 위아래로 나는 기러기를 계기로 동작화면으로 바뀌었다. '참성단의 맑은 조망(星壇淸眺)'이란 표현처럼 맑디맑은 모습이었기에 기러기가 날지 않았으면 그림으로 착각할 수 있었다.

두 눈에 포착되는 대상에 낙조도 예외일 수 없다.

欲說舊遊怳夢醒
옛 유람 말하려 하건만 꿈에서 깬 듯하고
山頭老石尙亭亭
산 위의 큰 바위는 언제나 정정하네
丹霞建作孤標逈
붉은 노을은 저 멀리서 고고한 모습 지어내고
元氣扶持萬古寧
원기는 만고의 안녕을 부지하네

이건창(李建昌·1852~1898)의 조부 이시원(李是遠)이 참성단에서 낙조를 소재로 지은 시이다.

첨성단을 유람하던 때의 기억이 아득해지는 데 비해 산 위의 바위는 변함없이 제자리에 있다. 시선을 돌리니 붉은 노을도 예전과 변함없이 고고한 모습이다.

자연물과 자연현상은 반복·항상성·일상성을 근간으로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만물이 자라는 원기도 여전할 것이라 마무리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보건대 작자의 기본 사유는 내면적 자각을 우주 자연과의 일체성의 자각이라는 측면에서 풀어내려는 성리학에 두고 있다. 우주 만물의 일상성에 기대 내면의 자각을 심화시키려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가 병인양요(丙寅洋擾·1866년) 때 가족들을 피난 보내고 순절한 것도 이런 마음과 무관하지 않다.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