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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한병철 지음ㆍ김태환 옮김ㆍ문학과 지성사)라는 책에서 철학자인 저자는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질병이 있다"고 말한다. '피로'가 우리 시대의 만성적 질환이라는 뜻이다. 이 같은 진단에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 같다. 너도 나도 피곤함을 느끼고 사니까. ▶저자는 또 사람들이 규율적, 복종적 사회에서 벗어나자 자신을 뛰어넘는 성과를 내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면서 스스로를 마모시켜가는 이율배반으로 '피로사회'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능력, 성과, 자기 주도, 과잉 등과 같은 긍정성 패러다임이 병의 요인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또다른 측면에서 보면, 우리 사회는 '피로사회'인 동시에 '응석사회'라 할 수 있다. '응석' 바이러스가 널리 퍼져 여러가지 심각한 질병을 일으키고 있는 데도 그를 묵인, 동조, 방관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병든 현실이다. 특히 어른들의 '응석'은 보기에도 민망하다. ▶강원랜드에서 수년간 230억 원을 탕진하자 소송을 낸 이가 있다고 한다. 1회 베팅의 한도 규정을 피하려고 이른바 '병정'을 고용해서 대리 베팅까지 시킨 것을 강원랜드가 묵인했고, 자신이 도박중독자인 걸 알면서도 계속 출입을 시켜 피해가 커졌다는 주장을 폈다고 한다. ▶1·2심 법원은 강원랜드가 15~20퍼센트의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지만, 대법원은 강원랜드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 전원 합의체가 '자기 책임의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따른 결과는 본인이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어른의 일반상식인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가 도박꾼인 나를 보호해 주지 못했음으로 배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법에 기댄 응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가는 부모가 아니다. 모성을 기대하는 것부터가 전근대적 사고의 유형이다. 자유의지의 신장은커녕 국가의 과보호를 요청하고 있으니 말이다. ▶북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이 도박, 마약, 매춘 정책에서 실사구시적 융통성을 보이고 있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청교도적 기치는 누구나 높이 내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해결 난망인 '정치적 응석'에 의한 캠페인이라면 재고해야 한다.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