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복 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  
보스턴 서퍽 카운티는 매사추세츠 베이를 끌어안고 있었다. 곧 넘칠 것처럼 출렁이던 대서양은 도심을 빠져나온 찰스강과 한 차례 어르고, 어느 새 코발트빛으로 갈아입은 채 거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구도심에 위치한 헤이 마켓은 말이 시장이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만 문을 여는 소규모 5일장이었다. 170년 역사가 저장돼 있는 시장을 꼼꼼히 훑어보니 우리나라 재래시장의 그 것과 별 차이 없이 정겹고 아기자기해 보였다. 천막을 세우고 빈 박스를 허리 높이로 늘어뜨린 좌판에 각종 채소와 해산물을 진열해 놓은 거며, 비교적 저렴한 옷가지 등을 걸대에 걸어 놓고 파는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의 재래시장이었다. 오와 열을 맞춘 좌판의 행렬 사이를 오가며 여유롭게 장을 보는 다국적 현지인들과 종이 상자를 아무렇게 오려낸 팻말에 쓰인 가격을 보며 물건 값을 흥정하는 모습은 오히려 정감을 더해 갔다. 호박처럼 둥근 가지에 놀라고 한 접시에 대여섯 개 올린 클램(대합조개)을 5천 원 정도 가격을 지불해 레몬과 핫소스를 즉석에서 뿌려 먹는 모습을 보면, 두 번의 놀라움을 통해 세계가 결코 이질적이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오랜 역사, 바다와의 친화적 상관관계, 부족해 보이지만 결코 천박스러워 보이지 않는 시장을 보며, 우리 재래시장의 지나온 길을 조심스레 되짚어보게 했다.
진흙과 개흙이 뒤범벅인 시장 통로에 맞바람이 불자 차일에 고였던 빗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신포동의 정체성 근저가 바닷가였음을 증명하는 묽은 개흙이 지나는 손님의 치맛자락에 먹물 뿌리듯 얼룩지게 만들곤 했다. 고작 광목에 끈을 매달아 남의 가게에 두 끈을 의지하기를 연쇄적으로 이어갔으니, 시장의 통로는 그야말로 차일의 바다였고 물 폭탄의 아수라장이었다. 그랬던 것이 색색의 비닐천막으로 바뀌었고 급기야 타마구(Tarmac)가 바닥에 깔려 비 오는 날 상인들의 시름을 덜어주었다. 시장의 환경은 급속도로 변해갔다. 좌판은 높아졌고 물건들이 한 걸음 씩 더 앞으로 나왔다. 차일에서 비켜난 햇볕이 쏟아져 내리는 지점이 물건 놓을 자리의 끝선이라는 등식은 사라져버렸다. 전반적인 외형은 일본의 재래시장을 벤치마킹해서 그런지 현대화 되었다는 느낌을 주지만, 되레 유년기 기억의 전체를 아우르는 정겨움과 복작대는 살가움은 찾기 어렵게 되었다.
과거에 대한 회상은 뿌리내린 기억들에 안식을 주지만, 미래를 담보하는 측면에서 추억의 열매에 만족해서는 안 될 상황이 재래시장의 현재이다. 재래시장 활성화 바람을 구체적으로 담은 의식 있는 상인의 노력이 절실하고, 이를 행정적으로 뒷받침해줄 지자체의 탄력적 지원도 해걸이 없는 열매를 위한 방책이 된다. 하이퍼마켓을 백안시하는 것도 경제적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어, 열배 백배 자구적 노력을 증명하는 선의의 경쟁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1963년 출범한 대형매장의 효시인 프랑스 '까르푸'가 오늘날 어떻게 지역 상권과 지방정부 그리고 사용자들과의 공동선을 위해 어떤 방식을 택했는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그렇기에 인천 재래시장의 시조격인 신포시장은 일시적 성시의 착각에서 벗어나 원칙준수와 상인의 유기적 소통이 우선돼야 하는 것이다. 편안한 쇼핑, 구매력 있는 상품, 제조장인의 손맛과 눈요기, 선을 지키는 깔끔한 진열, 손님을 사로잡는 친절 등이 공고해야 하고, 감동의 끈을 식탁까지 전하는 전략이 절대적인 숙제이다. 올해는 이른 추석으로 대목장에 악영향을 끼칠까 두렵다고 한다. 결실이 간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