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학 박사
2000년대 초반에 필자는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 드라마 '프렌즈' (1994)를 자주 보았다. 처음에는 영어공부 목적으로 미국 드라마 시청을 하였지만 나중에는 다른 미국 드라마를 찾아보기까지 했다. 그런데 나는 얼마 전 미국 방송사 6곳이 미국 드라마 자막 제작자 포함한 관련자 15명을 고소 한다는 뉴스를 TV를 통해 접하게 됐다. 자막 제작자들은 수 년 동안 아무 이윤 추구 없이 자신들의 시간을 들여 많은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의 이런 열정이 오히려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불가피하게 만드는 불편한 현실이 되었다. 사실, 이들이 자막을 자체 제작한 것은 순수한 팬심에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팬 커뮤니티의 자막 제작은 팬으로서의 취향과 개성을 공유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문화집단의 능동적 생산 행위로 분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연구가로서 그리고 미국 드라마를 좋아했던 한 명의 팬으로서 필자는 문화적 가치가 아닌 경제적 가치가 최우선 되는 이 소송이 많이 안타까웠다. 오늘은 팬과 스타의 우정과 의리를 소재로 한 영화 '라디오스타'(2006)를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1988년 가수왕을 차지하는 등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최곤(박중훈 분)은 그 후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을 겪으면서 2006년 현재 미사리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최곤은 카페 손님과의 주먹 다짐으로 유치장에 가게 된다. 그의 매니저이자 팬인 박민수(안성기 분)는 합의금을 구하러 다니다 예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김국장(윤주상 분)으로부터 MBS 방송국 영월지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아주면 합의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 들이게 된다. 10년 넘게 자체 방송이 없었던 지방 송출국에서 DJ를 맡게 된 최곤은 아무런 의욕도 노력도 없이 방송을 진행한다.

그러던 어느 날 최곤은 커피 배달 온 청록 다방 김양에게 마이크를 넘겨 주면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라고 시킨다. 이에 그녀는 자신의 엄마에게 못 다했던 얘기들을 하게 되고 이를 들은 지역 청취자들은 같이 가슴 아파한다. 이를 계기로 최곤의 '정오의 희망곡'은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프로그램으로 성장한다. 또한 최곤을 자신들의 우상으로 생각하는 영월 유일의 락밴드 이스트 리버(노브레인)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 최곤의 방송은 전국적으로 유명해 진다. 최곤이 인기를 얻자 스타팩토리 기획사 대표는 매니저 박민수를 만나 최곤과의 결별을 조건으로 최곤과의 계약을 추진하게 된다. 매니저 박민수는 최곤의 앞날을 위해 그의 곁을 떠난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최곤은 자신의 방송을 통해 박민수에게 자신의 옆으로 돌아올 것을 호소한다. "천문대에서 별 볼 때 형이 그랬지, 자기 혼자 빛나는 별 없다고……와서 좀 비춰주라 형….나도 반딱반딱 광 좀 내 보자 형…내 말 듣고 있어? 듣고 있음 돌아와 형…" 20년 가까이 자신을 스타로 살게 해 준 한명의 팬을 져버리지 않고 의리를 지키는 멋진 스타와 팬의 이야기가 바로 영화 '라디오 스타'이다. 팬과 스타의 진한 우정을 그린 영화 '라디오 스타'처럼 팬과 스타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팬이 없는 스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가 한국에 들어와서 팬덤을 형성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자막 제작자들의 열정과 노력이 투영 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의 한국 내 미드 팬덤은 없었을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온라인 팬덤컬쳐를 활성화했고 소수의 팬으로부터 시작한 온라인 팬덤이 궁극적으로 보다 폭 넓은 문화취향 향유자를 만들어 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막 제작은 문화적 시각에서는 문화 생산자의 창조적 모습이라고 평가해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한 때는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갔던 친구의 모습에서 현재는 등을 지고 있다. 그것이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는 길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