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 영전에서 생각한다
지용택.jpg
때가 되어 또 다시 빈손으로 선생님을 찾아뵈러 왔습니다. 선생님께 좋은 소식도 없이 찾아뵙는 것이 민망하여 이 근래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몇 가지 상황을 보고드립니다.

이 근래 우리나라에는 큰 나라 정상들이 여러 가지 이유를 앞세워 빈번하게 찾아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이처럼 강대국으로부터 '러브 콜'을 받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양손에 떡을 쥔 것이라 좋아할 일이 아니라 양 어깨에 힘겨운 짐을 올려놓은 것이라 걱정됩니다.

작년에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 당주석 시진핑과 양국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 오면서 귀한 서화 작품을 선물로 받아왔습니다. 이 선물은 당나라 시인 왕지환(王之渙, 688~742)의 '등관작루(登觀雀樓)'라는 유명한 시 한 편이었습니다.

이 시도 당시사(唐詩史)에 있어 유명하지만 이 작품의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중국현대철학사의 거장 펑유란(馮有蘭, 1895~1990) 선생의 친필 휘호란 점에서 그렇습니다. 1990년 95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분의 유작이라는 점에서 더욱 귀하다 하겠습니다.

이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白日依山盡
눈부신 태양 서산에 지고

黃河入海流
황하는 벌써 바다로 들어가네

欲窮千里目
천리 먼길 보고 싶거든

更上一層樓
다시 한 층 더 올라가야 하네

▲ 1952년 7월10일 새로 선출된 제2대 후반기 국회의장단. 왼쪽부터 윤치영 부의장, 신익희 의장, 조봉암 부의장. /사진제공=죽산조봉암전집
그러나 이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의미심장합니다. '세상은 크게 변하고 있으니 우리 함께 손잡고 더 큰 일을 해보세'라는 시진핑 주석의 뜻이 있으리라 생각되는 것은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당시(唐詩), 고사, 사자성어 등을 이용해 우회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문화적으로도 관례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금년 7월 초 한국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은 역시 이백(李白, 701~762)의 '행로난(行路難, 세상살이 어렵다)'란 장시 중에 "長風破浪會有時 直掛雲帆濟滄海(장풍파랑회유시 직괘운범제창해)"란 칠언 절구를 서울대학교 강연에서 인용했습니다.

"거센 바람이 물결 가르는 그때가 오면 구름 같은 돛을 달고 푸른 바다로 나가리라"

작년에 박 대통령을 통해온 '등관작루' 보다 이번 '행로난'에서 표현한 시구는 앞으로 멀리 나가려는 강력한 힘이 느껴집니다. 우리는 미국과 국교를 돈독히 해야 하지만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도 미국 못지않게 매우 중요합니다. 시진핑 주석이 '아시아·아프리카개발은행'에 함께 하기를 바랐지만 미국 정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정부에 반대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우리 정부는 '아시아·아프리카개발은행'에 참여 못하는 이유를 국민에게 분명히 설명해야 합니다. 이렇게 미·중 간의 이해관계가 해가 거듭될수록 더욱 예민해지기 때문에 우리의 외교전락도 어려워질 듯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있고 곱지 않지만 일본도 있습니다. 이렇게 열강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이 때로 본의 아니게 사대(事大)도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적대해본 적 없는 베트남에도, 이라크에도 파병했습니다. 사대는 약소국이므로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민족의 영혼까지 파괴하고, 정체성을 빼앗기는 사대주의(事大主義) 만큼은 피해야 합니다.

선생님!

▲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기관과 경찰의 방해로 선거등록조차 못한 조봉암 선생이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다. 월간 신동아에 게재된 사진이다. /사진제공=죽산조봉암선생명예회복범민족추진위원회
우리는 이렇게 국내적으로, 국제적으로 어려운데 과연 우리의 활로는 무엇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답답한 상황에서는 선생님이 목숨과 바꾸며 지켜가고자 했던 평화통일의 전단계로 남북한이 서로 소통하여 인물, 문화, 물류, 관광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시급히 교류를 확대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성공단 5만여명이 지난 10여년간 온갖 우여곡절 속에서도 평화롭게 일 해왔고, 조화를 이루며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조금도 확대·발전시키지 못한 것은 8000만 모두가 역사적으로 책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동서독 통일 전문가이며 독일연방하원의원 하르트무트 코쉬크는 동서독 분단 시대에 자신들은 갖지 못했던 개성공단을 부러워했습니다. 저는 그 기사를 읽으며 가슴이 찡하다 못해 마음이 아팠습니다.

더욱이 "독일연방정부는 통일보고서를 계속 발간하여 사회·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통합이 어디까지 왔는가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지금 독일의 실업률은 유럽 최저 수준이고 특히 젊은 층의 실업률이 유럽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낮은 편입니다"라는 말에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

▲ 진보당의 기관지 역할을 했던 월간지 '중앙정치'. 조봉암 선생이 표지로 등장했다. /사진제공=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선생님이 서거하신 지 어느덧 반세기가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무능한 후학들은 선생님이 목숨으로 기치를 든 평화통일을 성취하지 못하고 이렇게 넋두리나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못난 것들이라고 꾸지람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처럼 험난한 국제 질서와 국내 실정이라도 우리가 바로 깨어나기만 한다면 세계로 나아가 평화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는 신념은 계속해서 힘을 얻을 것입니다.

사람이나 국가도 모두 거미줄 같은 관계망 속에 살아가고 존재합니다. 그러나 나가는 방향은 우리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책임도, 영광도 우리의 것이 되며 과오가 있었다면 그 과오를 넘어 새로운 활로를 찾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원인이 남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재생할 수 없는 패자의 원인이 될 뿐입니다.

따라서 평화통일의 기초는 우리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순자(荀子, BC298~238)>, '왕제(王制)'편에 "왕자가 되기도 하고 패자가 되기도 하며 편안하게 살아가기도 하고 위태롭게 멸망해 버리기도 하는 것은 원인이 모두 나에게 있는 것이지 남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란 구절이 있습니다. 개인사(個人事)나 정치의 모든 원인이 나로부터, 지도자로부터, 국민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오늘날 민주사회에서 모든 일이 우리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라는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 시조를 생각하면서 작년에도, 금년에도 선생님 묘역은 한결같으나 선생님을 뵈올 낯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