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운 인천YMCA 회장
지난 27일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영주 총무 목사, 원불교 남궁 성 교정원장 등 4대 종단 고위 성직자들이 서울고법에 이석기 선처탄원서를 제출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체제를 뒤엎으려던 내란음모 주동자를 선처하라는 주문이 국가의 종교 지도자라는 분들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그분들은 "이석기 등 내란음모 등의 죄목에 연루돼 구속재판중인 피고인들에게 선처를 베풀어 우리 사회의 한 일원으로 화해와 통합, 평화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자승 총무원장은 탄원서에서 '전염이 두려워 나병 환자에게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을 때,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종교인의 사명'이라며 이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을 종교인의 양심(?)으로 호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지도자들의 선처 요구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항소심에서 1심과 동일하게 징역 20년에 자격정지 10년을 구형했다. 이번 종교 지도자들의 이석기 선처탄원서가 검찰 구형에 영향을 주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내란을 꿈꾸고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던 자들 일곱 명에게 선처를 베푼다고 해서 우리사회가 갑자기 화해와 통합, 그리고 평화와 사랑을 실천하는 사회가 될 수가 없는 일인데 그 네 분의 종교지도자들이 행한 행동을 국민들이 이해 할 수 있을까 .
종교의 사회적 정의는 무엇이며. 종교인의 신앙양심이란 무엇일까. 구약성경에는 십일조의 사용처를 과부와 고아의 구제를 위해 최우선적으로 쓰라고 했고 신약성경 사도행전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교회가 나서서 그들을 구제하고 선을 베풀었으며 불의한 일에 대항해서 사회적 정의를 바로 하고자 죽음을 불사한 세례요한도 있었다.
즉 종교인의 양심에 입각한 사회적 정의의 실천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 일은 기독교 뿐 아니라 타 종교의 가르침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사회 정의와 절대 선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물질만능주의에 종교 역시 매몰되어 가는 듯 해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으로 수많은 이들이 슬픔에 잠겼고 부실한 국가 안전 시스템을 근본에서부터 점검해야 할 숙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점점 골이 깊어가고 있는 이념과 사상의 대립 구도 또한 우리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때에 사회적으로 신망을 얻고 존경을 받아야 할 종교 지도자들이 국민의 정서와 너무 동떨어진 발언을 쉽게 하게 되면 국민은 사회적 정의와 가치의 혼선으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종교 지도자들의 발언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이석기 피고인은 나병 환자도 아니고 과부나 고아도 아니다. 내란을 조장했던 종북 세력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과 행동에 반성과 뉘우침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을 아직 재판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선처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정치적 중립 위치에서 사회정의를 실천하고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종교 지도자들은 특히 말을 아껴야 한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국민들이 절망하지 않도록 메시지를 주고, 쓰러진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조력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정국이 불안할 때 이를 타계하기 위해 겸허한 자세로 기도하고 수양을 쌓으며 종교의 숭고한 가치를 실현해 나가야 하는 것이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의 역할이다. 종교인의 양심은 무엇이며 종교의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