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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 때부터 자유공원 인근의 송학로(松鶴路)에 살고 있는 필자는 공원길을 걸으면서 제물포고등학교 쪽을 바라보면 길영희(吉瑛羲 1900~1984)교장 선생님의 생각이 자주난다. 인천중학교에 입학해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교훈(校訓) 아래 무감독 시험을 정착시키고 제물포 고등학교 교사 신축 당시에는 벽돌을 나르던 체험은 값진 경험이었다.

▶제자들로부터 '영원한 스승' 또는 '한국의 페스탈로치'로 칭송되고 석두(石頭)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선생님은 해방 직후부터 1961년까지 16년간을 인천중학교와 제물포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두 학교를 전국적인 명문으로 육성하는데 이바지한 한국 교육 사상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매년 3월1일이 되면 제자들이 모여 추모식을 마련한다.

▶1961년 정년퇴직한 선생님은 충남 예산에서 '가루실' 농민학교를 설립해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찾아오는 제자들에게 논어의 명구를 골라 작성한 '논어초'를 친필로 써서 나누어주면서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을 것을 권고했다. '논어초'는 한국이 배출한 비범한 교육자요 사상가였던 길 선생님께서 오랫동안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선별한 인류 불멸의 교육자 공자의 어록인 셈이다.

▶지난 30여년 동안 길영희 교장 선생님의 교육 이념과 업적을 기리는 사업을 꾸준히 벌여 온 심재갑(沈載甲) 선생님은 길 교장께서 고른 논어명구집을 세계화 추세에 맞추어 영어 번역을 추가한 책자를 펴냈다. 영문 번역은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제임스·리그 교수의 번역본을 인용해 논어를 우리말뿐 아니라 영어로도 읽을 수 있는 값진 책자를 만든 것이다.

▶얼마 전 심재갑 선생님께서는 손수 붓글씨로 인천중학교를 나온 신평재와 신형재군을 학우(學友)라고 칭하며 귀한 책자 두 권을 보내주셨다. 길영희 선생님의 업적을 기리는 일에 매진해 온 심 선생님이야말로 인천을 사랑하고 인천을 위해 길 교장의 업적을 승화시키면서 스스로를 불태우고 있는 분이다. 평재와 형재가 논어를 읽고 또 읽으면서 삶의 지혜를 깨닫는 것을 보면서 길영희-심재갑 선생님의 큰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