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의 창 ▧
달 밝은 여름밤이면 풀숲에서 가녀린 휘파람 소리 같은 노래가 들린다. 무슨 풀벌레 소리인가 그 주인을 찾으면 어느새 노래를 그치고 주인의 흔적은 찾을 길 없다.

여치와 배짱이와 달리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리는 듣되 무엇의 소리인지는 모를 터이다. 놀랍게도 지렁이가 소리를 낸다. 지렁이 몸에 소리를 내는 기관이 있어서 낮 동안 굴 속에 있다가 밤이면 몸을 내밀고 애련하고 청아한 소리로 대지에 말을 건다. 그만큼 땅이 살이 있고 작은 동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지렁이의 노래 소리를 듣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디 지렁이가 살 만한 땅이 있겠으며 촉촉한 풀숲이 있겠는가.

도심공원이나 압도적인 주거형태로 자리 잡은 아파트의 정원은 잔디로 관리되는데다 살충제와 제초제가 뿌려지기도 하며 수북이 자란 풀은 제초기의 칼날을 받기 마련이어서 지렁이는 물론 작은 곤충이나 동물이 살아갈 처지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잡풀이 아무렇게나 자란 관리의 사각지대, 도심 변두리 나대지 등이 방청의 유력 후보지인 셈이다.

어쨌든 예전에 비해 도심 곳곳에 공원이 많아졌다는 사실은 그나마 다행이다.

완충(시설)녹지, 경관녹지, 연결녹지 등의 전문적 구분을 떠나 크고 작게 도심녹화가 이뤄졌다. 인천시 자료에 따르면 도심공원은 885개소이며 조성면적은 2633만1097㎡에 이른다.

이를 특성별로 보면 소공원 79개소, 어린이공원 547개소, 근린공원 220개소, 문화공원 4개소, 수변공원 4개소, 묘지공원 33개소, 체육공원 10개소, 도시자연공원 18개소 등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몇 년 인천지역 녹지율이라든가 시민 1인당 공원면적을 들어 행정의 도시계획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없었다.
거창했지만 지렁이의 노래를 빌미로 말하고 싶은 것은 도심공원의 질에 대해서다. 그 가운데 근린공원의 경우 위치와 규모만 다를 뿐 서로 비슷한 디자인과 기능을 갖는 공원을 우리는 대부분 경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애용되는 몇 종의 나무들을 심고 잔디로 땅을 덮고 오솔길과 주 통로를 낸 다음 운동기구 몇 개 세우고 의자를 듬성듬성 가져다 놓은 형태가 대부분이다. 현재의 공원 형태로는 '녹색 말뚝'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지역의 한 환경전문가는 "생태적으로 건강한 숲은 나무뿐만 아니라 토양미생물, 버섯, 풀, 지렁이, 곤충, 개구리, 뱀, 각종 조류와 포유류 등이 먹이 사슬을 이루고, 낙엽을 포함한 동·식물 사체 등이 어우러진 생명 공간을 구성한다.

반면 파괴되거나 단절된 숲은 다양성을 잃은 단순한 몇 종의 나무만이 녹색 말뚝으로 남아있을 따름이다"라고 어느 글에서 밝힌 바 있다. 녹색 말뚝이란 그야말로 '혼'과 '생명'이 없는 인공의 녹지를 일컫는다.

도심공원이 자연의 숲처럼 될 수는 없다. 각종 동물이 서식할 수도 없고 사체가 거름이 되는 생명 순환의 공간도 아니다. 그렇다고 표준화되고 전형적인 방식으로 공원을 만드는 것이 최선일까. 공간구성의 창의성,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을 고려한 기능, 메마른 도시에 조금이라도 더 자연의 숨결을 불어넣기 위한 공원에 대한 철학이 가볍게 여겨질 이유는 없다.

도심공원이 녹색 말뚝 신세를 벗어나려면 우선 인공적 요소를 가급적 뺀 자연형 녹지의 면적을 과감하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일부 시범관리되고 있는 자연형 녹지는 '곤충, 새, 동물과 땅속의 미생물이 안전하게 숨어 살 수 있고 먹이도 얻을 수 있는 작은 생물의 서식공간'을 말한다.

따라서 풀깎기, 가지키기, 농약 뿌리기 등을 하지 않고 자연형으로 관리되는 녹지가 이에 해당한다. 아쉬운 데로 주로 수풀이 우거지도록 방치하는 형태로 유지된다.

앞으로는 그 수준을 높여 기존 공원을 포함, 일정 규모 이상의 근린공원은 우리의 고유 수종을 중심으로 나무와 꽃을 배치하고 가급적 개울과 습지 등 친수공간을 적극 반영, 풀과 물이 어우러져 작은 숲을 옮겨다 놓은 듯한 초록쉼터가 돼야 한다. 다만 이상의 바람이 실현되려면 녹지행정 조직과 예산의 관성이 바뀌어야 한다.

도심공원을 대하는 민·관 우리 모두의 철학도 변해야 한다. 도심공원은 녹색 장식물이 아니다. 놀이터와 운동장소로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돈을 꼭 많이 들여야 하고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작품도 아니다.

좋은 도심공원을 만들기 위한 민·관 협력과 외부 전문가의 참여 역시 매우 중요하다.

인천시민은 단순 이용자의 입장을 떠나 공동 관리책임자로서의 시민의식을 갖춰야 한다.

쌓인 쓰레기, 노숙, 훼손된 수목, 흡연, 풀밭을 온통 차지한 텐트들로는 쾌적한 녹지를 올바로 유지할 수 없다.

/지영일 그린스타트인천네트워크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