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5)
조우성.jpg

19세기 열강들은 포함 외교를 벌였다. 말이 외교이지, 강제된 해상 폭력이었다. 그에는 신식 군함이 등장했다. 놀란 일본은 1872년 해군성을 설립해 무력 강화를 꽤했고, 청국도 덩달아 독일에서 정원ㆍ진원ㆍ제원호 3척을 구입했는데 정원ㆍ진원호는 당시 세계 최강이었다.

▶이를 으스대고 싶었던지, 1891년 7월 북양함대 정여창 제독이 진원호와 정원호 등 군함 6척을 이끌고 친선 방문차 요코하마 항에 나타났다. 다시금 충격을 받은 일본은 프랑스 등에 서둘러 군함을 발주했고, 그때 송도함 등 소위 '3경함(三景艦)'이 등장했었다.

▶그러나 이들 군함보다 더 유명해진 것은 1903년 인천 내해에서 일본 군함 '치요다(千代田)' 호 등과 전투를 벌이다가 자폭한 러시아의 '바략' 호이다. 수적인 열세로 당해 낼 수 없자 월미도 뒤편에 가 자폭 후 항복한 것인데, 러시아는 이를 뒤집어 선전했다.

▶제정 러시아의 니꼴라이 2세 황제는 패전 해군들을 '영웅'으로 치켜세우며 페테스부르그에서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벌였고, 르도네프 함장의 동상을 콤소몰 공원에 세워 애국주의 선양에 활용했었다. 최근엔 인천에서 어렵게 빌려간 '발략' 호 깃발을 순회 전시 중이다.

▶진원호, 치요다 호, 발략 호는 한 세기 전 동북아의 바다를 어지럽혔던 군함들이었다. 이미 이름만 전하는 역사적 유물로 치부되어 왔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중국, 일본, 러시아가 언젠가는 설욕전을 벌이겠다는 듯 그때의 군함 부활에 힘을 쏟고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가 선수를 쳤다. '제물포해전'에서의 굴욕을 만회하겠다는 듯, 그들은 최신형 거대 순양함 '발략' 호를 건조시켜 인천항에서 종종 위용을 과시했고, 일본은 '치요다' 호를 본 뜬 박물관을 짓고, 러일전쟁을 "아시아를 구한 전쟁"이라며 어이없는 선전을 해댔다.

▶청일전쟁 100년을 맞은 중국도 1894년 9월 17일 '황해해전'에서 일본에 당한 순양함 '치원(致遠)호'의 기념함을 건조 중이다. 한 세기 전의 구원(舊怨)을 못 잊고, 서로 으르렁대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지만, 그간 분단돼 그 꼴을 다시 봐야하는 운명이 한스럽기만 하다.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