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후 박사 '도시와 건축에 새로운 생명을' 강연 … 개항 각국거리 조성 지적도
"취리히처럼 삶의 질이 높은 도시의 특징은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도시 구조가 똑같다는 것입니다. 얼핏 동전의 양면처럼 보이는 보존과 정체라는 공식을 깬 취리히는 고층건물, 주차공간도 적지만 세계적인 회사가 자리 잡으면서 행복하고 잘사는 도시가 됐습니다."

도시사회학자이자 건축가인 김정후 박사가 지난 19일 인천 동구 창영동 스페이스 빔에서 '도시와 건축에 새로운 생명을'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지난해 11월 펴낸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출간 기념회를 겸한 자리였다.

그는 2003년 한국을 떠나 런던정경대학에서 도시재생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런던대·동국대에서 강의하며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자문관도 맡고 있다.

김정후 박사에게 인천은 단순한 연구 대상이 아니다.

"지금도 눈감고 길을 찾을 수 있는 놀이터와 같은 동네"이기 때문이다.

화평동에서 태어나 송림초, 송도중을 거쳐 제물포고를 졸업한 그는 "인천은 고향이면서도, 옳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에 관심이 크다"며 "우리는 재개발이라는 쉬운 방식에 익숙하지만, 도시의 미래는 결코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문제는 삶의 질"이라고 했다.

그는 취리히의 도시재생 사례를 주목한다.

수년 전부터 원도심 활성화를 기치로 내건 인천이 배울 만한 길이다.

김정후 박사는 "취리히 서부 지역은 전형적인 공장 지대였다가 산업 시설이 떠나면서 방치돼 있었다"며 "취리히는 '지역을 재생하는 데 어떠한 것도 손댈 수 없다'며 버려진 공장을 없애지 않고 새로운 옷을 입히면서 최대한 환경을 유지하고 활력을 찾았다"고 말했다.

결국 취리히 서부는 문화예술뿐 아니라 주거, 상업, 업무 기능이 스며든 지역으로 변모했다.

김정후 박사는 중구가 추진하는 개항 각국거리 조성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세금으로 외국의 껍데기만 갖고 와서 단순히 보여주는 공간으로 만드는 건 잘못된 행정을 넘어 도시를 치장하는 오류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결정판"이라고 했다.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에는 유럽에서 공장 등 산업유산을 주거·업무 시설로 재활용한 사례가 소개된다.

김정후 박사는 이 책에서 "산업유산을 적극적으로 재활용하는 노력은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방식을 모색하는 높은 수준의 사회 디자인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바로 "우리 도시가 과거를 존중하며, 현재를 다듬고, 나아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지혜"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