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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어떤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린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 니체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망각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독자들도 자신의 인생사를 뒤 돌아보면 정말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 하나 이상은 있었을 것이다. 필자도 대학 낙방의 기억, 사랑과 취업 실패에 대한 기억 등 크고 작은 실수로 인한 불행한 기억들이 있다. 만약 내가 모든 실수를 기억하고 마음속에 다 품고 갔다면 아마도 우울증에 걸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적당한 망각은 사람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기능 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완전한 기억 소멸은 인류를 발전시키는 동력을 없애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과거에 대한 집착은 불필요 하지만 과거를 반면교사로 삼아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만든다면 불행했던 그 기억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적 취사가 가능하다면 사람은 언제나 좋은 추억만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똑같은 실수를 범하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될 수 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억에 대한 인위적인 소거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가능하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spotless mind)>(2005)은 천재 작가 찰리 카우프만이 시나리오를 쓰고 미셸 공드리가 연출한 영화로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않았지만 마니아층이 형성 될 정도로 미학적, 형식적 완성도가 높은 영화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과거 기억에서 현실로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정신없이 드나들면서 극이 진행되는 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 멜로영화와는 차별성을 가진다. 영화 속 주연으로는 코믹연기에서 멜로연기로 변신한 짐캐리와 <타이타닉>의 여주인공으로 유명했던 케이트 윈슬렛이 등장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조엘'(짐 캐리)과 충동적이며 외향적인 여자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은 서로 다른 성격에 끌려 사귀게 된다. 그러나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오래된 연인들처럼 서로에게 더 이상 호감을 느끼지 못하고 결별을 하게 된다. 클레멘타인은 자신의 성격처럼 즉흥적으로 헤어질 것을 결정하고 기억을 지우는 회사 '라쿠나'에 가서 조엘과의 모든 기억들을 지워버린다.
라쿠나에서 보내 온 쪽지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엘은 고심 끝에 자신도 같은 회사에 가서 클레멘타인과의 기억들을 모두 삭제하게 된다. 결국,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사이가 됐다. 그러나 둘은 우연히 자신들이 처음 만났던 해변가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운명처럼 다시 한 번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사랑에 빠진다. 그들에게는 과거의 불편했던 기억 속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상대방을 연인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이 영화의 마지막은 해피엔딩과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

2014년 상반기 대한민국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염전노예 사건,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사건, 최악의 사고인 세월호 참사 그리고 최근에 군대에서 일어난 대형 총기사건 등 우리 기억 속에서 삭제 하고 싶은 사고들이 2014년 상반기에 발생했다. 슬프고 힘든 기억들의 감정을 훌훌 털어버리는 것은 좋지만 사고 원인에 대한 기억마저 지워버리고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인생이든 국가든 발전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과거 아픈 기억들을 망각하지 말고 비극적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았으면 한다.